[설교]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설교]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 글 | 홍오윤(기쁜소식대구교회 목사)
  • 승인 2023.10.18 16: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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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0월호 기쁜소식
CLF 강연 | 진정한 회개와 자백(제5강)- 마지막회

 

신앙생활의 두 기둥인 회개와 믿음. 둘 가운데 하나라도 빠지면 신앙은 바로 서지 못해 무너지고 만다. 성경이 말하는 진정한 회개는 어떤 것인가? 바르게 회개하고 바르게 믿을 때 비로소 참된 신앙의 길에 들어설 수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하면서 하늘의 신령한 축복들을 마음껏 누릴 수 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을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인도할 수 있다. 
한국 CLF(Christian Leaders Fellowship) 컨퍼런스에서 홍오윤 목사가 ‘진정한 회개와 자백’을 주제로 목회자들에게 강연한 내용을 정리하여 5회에 걸쳐 소개한다. 

 

이번 시간에는 자백을 중심으로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자백에 대한 말씀이 요한일서 1장에 나오는데, 사람들이 이 내용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해 잘못된 믿음의 길을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요한일서의 핵심은 하나님과 우리의 ‘사귐’
사도 요한이 요한일서를 기록한 목적에 대해 1장 4절에서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케 하려 함이로라.”(요일 1:4) 어떻게 하면 이렇게 되는지는 앞에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요일 1:3) 요한일서는 ‘하나님 및 예수 그리스도와 사귐을 가져 우리 기쁨을 충만하게 하기 위해 썼다’고 했습니다. 
요한일서의 핵심은 하나님과 우리의 ‘사귐’입니다. 1장은 그 중에서 우리가 죄에서 벗어나 하나님과 사귐을 갖는 이야기입니다.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 1:7) 우리가 빛 가운데 행하면 하나님과 사귐이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자백에 관하여 이야기합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요일 1:9) 우리가 죄를 자백하면 하나님이 우리 죄를 사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앞에 언급한 7절 말씀대로, 죄는 예수님의 피가 씻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우리 죄를 사하신다는 말은 예수님의 피로 우리 죄를 씻는다는 이야기입니다.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성경은 ‘예수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히브리서에서도 이와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 9:22) 이 말씀대로 죄에 대한 처벌이 분명히 이루어진 다음에 사함이 뒤따릅니다. 
하나님의 법은 죄에 대하여 사형을 언도합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했습니다.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드린 속죄제사를 보면, 그들이 속죄제물의 피로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피와 생명이 일반이기 때문입니다.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레 17:11) 레위기 17장 14절에서는 “모든 생물은 그 피가 생명과 일체라.”라고 했습니다. 속죄제물의 피가 흘려졌다는 것은 생명이 드려졌다는 말로, 죄의 삯인 사망이 지불된 것입니다. 
죄는 자백하거나 용서해 달라고 간구해서 사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죄의 삯인 사망이 반드시 지불되어야 합니다. 생명과 일체인 피가 죄를 씻습니다. 우리가 죄를 자백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자백한다고 죄가 씻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 자백해서 죄가 씻어질 것 같으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실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씻기 위해 피를 흘리셨습니다. 생명을 내놓으셨습니다. 원래는 죄를 지은 우리가 죽어야 하는데, 예수님이 우리 대신 죽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로 가신 것은 곧 우리가 간 것
구약 시대에 속죄제사를 드릴 때, 죄를 지은 사람이 그 죄를 씻기 위해 흠 없는 양이나 염소를 끌고 성막으로 가서 그 머리에 안수했습니다. 안수에는 ‘넘긴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죄를 지은 사람이 양이나 염소의 머리에 안수하면 자신의 죄가 속죄제물에게 넘어가는 것입니다. 안수에는 또 다른 의미가 들어 있는데, 바로 ‘동일해진다’는 것입니다. 안수함으로 속죄제물이 안수한 사람과 동일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속죄제물이 죽을 때 죄를 지은 사람이 죽은 것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3장에서, 예수님이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그때 요한이 예수님의 머리에 안수했습니다. 요한은 인류의 대표로, 그가 예수님에게 안수한 것은 온 인류가 안수한 것이었습니다. 즉, 죄를 지은 세상 모든 사람과 예수님이 일체가 된 것입니다. 그 후 예수님이 십자가로 가셨습니다. 그것은 곧 우리가 십자가로 간 것입니다. 예수님이 채찍에 맞으신 것은 우리가 맞은 것이고, 예수님이 못박히신 것은 우리가 못박힌 것이며, 예수님이 무덤에 들어가신 것은 우리가 들어간 것입니다. 
로마서 6장에서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것은 … 그의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의 살으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으심이니,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지어다.”(롬 6:6~11) 예수님이 죄의 값을 지불하고 죽은 것처럼 우리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을 대하여 산 자로 여기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여긴다는 말은 ‘그렇게 계산하라’는 의미입니다. 
예를 들어, 제가 사람들과 함께 식당에 가서 음식을 먹었는데 그 가운데 한 사람이 일이 있어 먼저 나가면서 음식 값을 내고 갔습니다. 제가 그 사실을 모르고 음식을 다 먹은 뒤 계산하려고 하면 직원이 그냥 가라고 합니다. 이미 계산되어 더 받을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우리 관계가 그와 같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은, 예수님의 죄가 아니라 우리 죄의 값을 지불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채찍에 맞으신 것은 우리가 맞은 것이 되고, 예수님이 죽으신 것은 우리가 죽은 것이 됩니다. 또한,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은 우리가 부활한 것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계산하라는 것입니다. 

모든 죄가 영원히 씻어져
요한일서가 기록된 목적은 ‘사귐’이며, 죄가 있는 사람은 하나님과 사귐을 가질 수 없습니다. 죄가 있는 사람은 영적으로 죽어 있는 상태여서 하나님과 사귐을 가지고 싶어도 안 됩니다. 먼저 죄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죄악 된 삶을 살았다는 사실을 시인하고 자백해야 합니다. 죄를 지었는데도 그 사실을 모르거나, 알아도 시인하지 않으면 죄를 씻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을 가지려면 먼저 수많은 죄를 지었음을 시인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죄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죄를 자백하면, 우리 죄를 위해 죽어주신 예수님의 피와 연결될 수 있습니다. “…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 1:7) 우리는 자신이 죄를 지은 사실도 인정해야 하고, 예수님의 피가 우리 죄를 씻은 사실도 인정해야 합니다. 지은 죄를 자백하는 것에만 머무는 것은 참된 신앙이 아닙니다. 자백한 뒤에는 예수님의 피로 죄를 씻음받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피가 우리 죄를 어떻게 씻었습니까? 성경은 영원한 속죄를 이루었다고 했습니다. 죄를 지을 때마다 씻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으로 우리 모든 죄가 영원히 씻어졌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다시는 죄를 씻기 위해 속죄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다고 했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히 10:12)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히 10:14) “이것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드릴 것이 없느니라.”(히 10:18)
죄는 지을 때마다 자백해서 용서받는 것이 아닙니다. 지은 죄를 자백하고 예수님의 피로 씻음받고, 이 과정을 되풀이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죄를 영원히 씻음 받고, 1장에서 2장으로 가야 합니다. 

우리에게 대언자인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다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요일 2:1~2)
요한일서 1장에서는 속죄제물이신 예수님을 이야기하고, 2장에서는 화목제물이신 예수님을 이야기합니다. 속죄와 화목은 다릅니다. 속죄받지 못하면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모든 죄를 씻음받은 성도가 잘못하면, 죄를 용서해 달라고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화목제물이 되신 예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내가 구원받았으니까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겠다’라는 우리 각오나 결심이 죄를 짓지 않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과 함께하는 동안 죄에서 멀어집니다. 우리가 죄를 짓는 것은 예수님과 멀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삶 속에서 죄를 지었다면 예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그런데 사탄은 우리가 바르게 살아야 한다고 속여 각오하고 결심하게 만듭니다. ‘성경을 읽어야지! 기도해야지! 거짓말하지 말아야지!’ 하지만 이런 각오나 결심은 얼마 지나지 않아 깨집니다. 그러면 ‘나는 안 되는 모양이다’ 하고 힘을 잃어버립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 속에 갇히도록, 사탄이 이끌어 갑니다. 
그러나 요한일서 2장은 우리에게 대언자인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다는 사실을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힘입어 하나님과 화목하며, 하나님과 함께할 때 죄를 짓지 않는다고 이야기합니다. 우리 각오나 결심이 우리를 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영적인 사람으로, 전도하는 사람으로 이끄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이끌림을 받다가 자기 생각이나 욕망에 이끌려 잘못된 길로 들어설 때가 있습니다. 그때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화목케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2장은 “나의 자녀들아”로 시작합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잘못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야기합니다. 화목제물이신 예수님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사탄은 우리 마음에서 끊임없이 송사합니다. ‘네가 이런 실수를 했잖아. 이런 거짓말을 했잖아. 이렇게 게으르잖아….’ 그러나 예수님이 우리를 변호해 주십니다. “하나님, 사탄이 하는 말이 맞습니다. 그러나 제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음으로 그 모든 잘못에 대한 심판이 끝이 났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을 갖는 데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나는 안 돼!’ 하고 낙심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변호하시는 예수님을 힘입어 다시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못했을 때 정죄에 빠져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처럼 연약한 나를 위해 예수님이 계시는구나.’ 하고 예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 죄를 영원히 씻은 예수님의 피가 우리를 정죄에서 벗어나게 해줍니다. 우리를 깨끗하게 했다는 사실을 지속적으로 이야기해 줍니다. 
“예수님이 흘리신 피는 하나님과 너 사이를 막힘이 없게 했어. 언제든지 그 피를 의지해서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어.” 야곱이 어머니 리브가가 준비해준 것으로 이삭 앞에 나아가 복을 받았던 것처럼, 우리가 예수님의 공로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 복을 받는 것입니다. 

죄악 된 세계를 끝내고 새로운 세계를 여신 예수님 
요한일서는 이처럼 속죄와 화목에 대해 이야기한 뒤, 새로운 피조물이 된 성도에 대하여 이야기합니다.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요일 3:6) 구원받은 성도 안에는 죄와 전혀 상관이 없는 씨가 들어 있습니다. 그 마음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담겨 있습니다.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요일 3:8~9)
하나님은 구원받은 우리를 보실 때, 육신의 모습을 보고 정죄하시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피로 온전케 된 우리를 보고 계십니다. 우리가 성경에서 그 사실을 정확히 알면 ‘아, 내가 예수님 안에서 온전하게 되었구나!’ 하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반대로 사탄은 우리를 속여서 자꾸 옛 사람을 보게 해서, 연약한 육신에 매여 살게 만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로 만드셨습니다. 그 생명은 죄와 상관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못박히신 십자가는 아담으로 말미암아 시작된 옛 사람을 끝냈습니다. 죄악 된 인간의 삶을 끝냈습니다. 죄인으로 출생한 인간이 죽음으로 끝나고, 예수님의 죽음으로 의인이 되었습니다.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죄악 된 세계를 끝내고 새로운 세계를 여셨습니다. 구원받은 여러분이 그 세계 안에 있다는 사실을 믿으십시오. 더이상 가책이나 정죄에 휘말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과 소망 안에서 복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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