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내 생에 가장 기뻤던 날, 바로 구원받은 날!
[라이프] 내 생에 가장 기뻤던 날, 바로 구원받은 날!
  • 글 | 김범섭(브라질, 기쁜소식상파울루교회 선교사)
  • 승인 2024.01.12 08: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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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월호 기쁜소식
선교사 수기(1회)

 

교만했던 내 마음을 부수기 위해 하나님은 내 삶에 이해할 수 없는 문제를 주셨고, 성경 속 말씀을 그대로 듣고 받을 수 있게 마음 밭 을 갈아주셨다. 이제는 수많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복된 직분을 내게 주시고, 내 삶을 이끌어가시는 주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며 선교사 수기를 시작한다. 

조종사가 될 꿈만 바라보며 달려가던 학창 시절
유교 가정에서 여섯 남매 중 넷째, 아들 중에는 장남으로 태어난 나는 농사를 지으시는 부모님의 엄격한 교육을 받으면서 무난하게 자랐다. 어릴 때 큰누님을 따라 성당에 간 것을 계기로, 누군가 내게 종교가 뭐냐고 물으면 가톨릭 신자라고 대답했다. 나는 ‘선한 일을 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착하게 살면 된다’는 마음으로 살았고, 그래서인지 어릴 때부터 착하다는 말을 많이 듣고 자랐다. 
중학교 3학년 때 교문 앞을 지나가다가 공군기술고등학교 신입생 모집 포스터를 보았다. 포스터에 그려진 비행기를 보면서 ‘조종사가 되어야겠다’는 확신이 들면서 꿈이 생겼다. 나는 망설임 없이 공군기술고등학교로 진학했다. 고교를 졸업한 뒤에는 공군사관학교로 진학해 조종사가 되겠다는 목표를 마음에 세웠다. 다른 학생들이 방학에 놀러다닐 때 나는 같은 꿈을 꾸는 몇몇 친구들과 학교에 남아 열심히 공부하며 사관학교 입시를 준비했다. 
어린 시절, 학교 정문에 쓰여져 있던 ‘할 수 있다. 할 수 있게 배우자’라는 교훈처럼, 나도 모르게 ‘하면 된다는 신념을 갖고 열심히 노력하면 무엇이든지 이룰 수 있다’는 마음으로 나는 살아왔다. 그렇게 열심히 목표를 향해 달려가던 어느 날, 그 모든 꿈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는 일이 찾아왔다. 

하루아침에 산산조각 난 조종사의 꿈
평소처럼 수업을 받고 있던 중 교관님이 갑자기 내 이름을 부르면서 일어나라고 하셨다. 엉겁결에 일어나자 다짜고짜 ‘왜 수업시간에 조느냐?’며 호통을 치셨다. 너무 당황스런 순간이었고, 모든 동급생이 나를 쳐다보는 가운데 꾸중을 들으면서 무언가 이상한 일이 나에게 일어나고 있음을 직감했다. 교관님 체면을 생각해서 대꾸하지 않았다. 수업이 마치자 나는 복도로 교관님을 뒤따라가며 불렀다. 
“교관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교관님은 대뜸 뒤를 돌아보시면서 “할 말이 뭐야?”라고 하셨다. 
“교관님, 아까 저는 글씨를 쓰고 있었습니다. 졸지 않았습니다.” 
내가 설명을 드리자 교관님은 더욱 큰 소리로 말하셨다.
“안 졸았어?”
“예, 안 졸았습니다.”
“안 졸았으면 됐어. 가 봐.”
이게 그날 있었던 일의 전부였다. 그런데 문제는 교관님이 나를 괘씸하게 생각하신 나머지 내 학과(전자공학과) 내신 성적을 최하위로 주신 것이었다. 엄격한 규율과 기숙사 생활에서 오는 모든 어려움도 오로지 조종사가 되겠다는 꿈 하나로 견뎌 왔는데, 고등학교 3학년이라는 가장 중요한 시점에 나는 학과 점수를 최하점으로 받았다. 그 성적으로는 절대 내가 목표로 하던 사관학교에 진학할 수 없었다. 결국 조종사의 꿈은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을 때 ‘아! 해도 안 되는 세계가 있구나…’ 하고 마음이 다 무너졌다. 열심히 하면 될 줄 알았는데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자, 나는 내 꿈을 조각낸 지 씨 성을 가진 그 교관이 밉고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지 씨 성을 가진 사람들과는 상종조차 하기 싫어졌다. 그는 내 인생에서 가장 싫은,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큰 좌절과 실패 속에 내 마음은 갈 길을 잃었고, 더 이상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허공만 쳐다보고 있던 그때 한 친구가 내게 다가왔다. 

기독교인이 됐지만, 마음속 근심과 의문은 커져만 가고
그 친구는 가끔 선배들한테 매를 맞거나 고향 생각에 젖어 울적해할 때도 있었지만, 늘 성경을 읽으면서 밝게 생활했다. 그런 모습이 한두 번씩 내 눈에 비칠 때면 속으로 ‘저 친구는 나하고 다른 무언가를 가지고 있구나’라고 생각했던 친구였다. 
그런데 이 친구가 낙심에 빠져 있는 나를 보고 교회에 예배가 있다면서 같이 가자고 했다. 그날은 정말 이상할 정도로 아무런 거부반응 없이 그 친구를 따라서 교회에 처음으로 발을 디뎠다. 
그렇게 가톨릭인이었던 나는 어느덧 기독교인이 되어 모든 예배에 참석하고 있었다. 성경 말씀이 너무 신비로워 다음 예배가 기다려졌고, 말씀을 읽고 외우면서 종교인이 되어 갔다. 
군에 입대한 뒤에는 부대 안에서 군인들과 성경 공부를 하며 쉬지 않고 이곳저곳 교회를 다니면서 봉사했다. 신앙이 좋다고 칭찬을 받으면서 새벽 기도도 열심히 다니고 인정을 받았다. 하지만 성경을 알고 배워갈수록 마음속 깊은 한구석에서는 근심이 되었다. 
‘내가 구원받지 않았다면 어쩌지? 마태복음 7장에서 선지자 노릇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권능을 행한 자들에게 예수님은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하셨어. 신랑을 기다리던 열 처녀도 다섯은 신랑을 못 만나고 구원을 받지 못했는데…. 만약 예수님이 다시 오셨을 때 내게도 “나는 너를 몰라.”라고 하신다면 뭐라고 대답해야 하지?’
그러다 하루는 용기를 내어서 내가 다니던 교회 담임 목사님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목사님은 오히려 내 믿음을 칭찬해 주셨지만, 내 마음의 깊은 문제를 해결해 주시지는 못했다. 그 후에 시간이 지나면서 성경에 대한 더 많은 의문들이 내 마음에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마태복음 6장 33절에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라고 씌어 있는데, “그의 의”가 무엇일까?’
교회 일이라면 무조건 우선순위로 해왔던 나는 그 답을 찾을 수가 없어 그 말씀이 너무도 막연하게만 느껴졌다.

‘하나님이 나를 모르신다고 하면 어쩌지?’
당시 나는 직업군인으로 영외에서 부대로 출퇴근하며 근무했다. 하루는 아침에 출근 버스를 기다리다가 한 선배를 만났다. 그는 학교 선배이자 같은 부대에서 근무하며 잘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항상 손에 성경을 가지고 출근했는데, 그날은 내게 가까이 다가와 여러 질문을 쏟아부었다.
“너는 어느 교회에 나가니? 구원받았니? 의인이야? 네 마음에 죄가 없니?”
다른 질문에는 대답을 잘했지만 ‘의인이야?’라는 질문은 이해가 되지 않았고 어떤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내가 가진 성경 지식에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라는 로마서 3장 10절 말씀이 뼛속 깊숙이 박혀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의인’이라는 말에 거부반응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 선배는 아침마다 출근길에 만나면 ‘시간 있냐? 이야기 좀 하자’며 말을 걸어왔고, 나는 늘 피하고 핑계를 대며 그와 최대한 부딪히지 않고 멀리하려고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 날, 그 선배가 내게 ‘우리 교회 목사님이 기독교방송인 극동방송에서 말씀을 전하시니 한번 들어보라’고 했다. 나는 극동방송을 늘 듣는 청취자였다. 그 선배가 다니는 교회는 이상한 교회라고 생각하며 피해왔는데, 내가 항상 듣는 라디오 방송에서 그 교회 목사님이 말씀을 전하신다니…. 이제껏 선배가 한 말들은 믿을 수 없었지만, 극동방송에서 나오는 설교들은 믿고 있었기에 ‘기쁜소식’이란 프로그램에서 박옥수 목사님이 전하신 창세기강해 말씀을 처음으로 들었다.
나는 항상 라디오를 녹음해 놓고 출근했다. 퇴근 후에 녹음해 뒀던 말씀을 들으면서 내 마음은 박옥수 목사님의 말씀을 향해 점점 열렸다. 여태껏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노아의 방주에 관한 설교를 들으면서는 ‘역청은 예수님의 피를 의미한다. 방주 안팎에 역청이 칠해진 것처럼 내가 나를 볼 때, 그리고 하나님이 나를 보실 때 우리 죄를 사하신 예수님의 피만 보이는 것이 완전한 구원이다’라는 말씀이 들려왔다. 뭔가 찡하는 깨달음이 오기 시작했다. 내 신앙에서 가장 의문스러웠던 부분도 바로 그것이었다. 
‘내 편에서는 내 신앙에 문제가 없고 구원받았다는 확신이 있어도, 하나님이 나를 모르신다고 하시면 어쩌지?’

말할 때마다 성경을 펼치는 선배 앞에 기가 꺾이고
확답을 할 수 없는 가장 어려운 문제였기에, ‘이야기 좀 하자. 시간 있냐?’고 묻는 선배에게 처음으로 시간이 있다고 말했다. 퇴근 후에 그 선배를 만났고, 선배는 나를 자신이 다니는 교회로 데리고 갔다. 물론 선배가 하는 이야기가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듣지 않을 생각이었다. 행여 자기가 의인이라고 할 경우에 대비해 ‘의인은 없다’는 성경 구절을 외우는 등 준비를 단단히 해서 갔다. 
처음에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행여 이 교회에 빠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선배에게 말할 기회도 주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말, 준비해 온 성경 구절로 반박하며 싸웠다. 선배는 그런 나를 보면서 화가 났는지 주먹으로 성경을 치기도 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내 할 말만 계속 하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모르면 듣지, 왜 그렇게 잘난 척해요?”
‘이게 뭐야?’ 싶어 쳐다보니까 옆쪽 가까이에서 마늘을 까고 계시던 사모님이셨다. 그때까지는 몰랐는데 우리 대화를 듣다 못해서 한소리 하셨던 것이었다. 그 순간 잠시 나는 멍해졌다. 속으로 ‘뭐 저런 사람들이 다 있나?’라고 생각할 때 그 정적의 틈을 타 선배가 맹공격을 퍼붓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선배가 하는 말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너는 반쪽 신앙이야. 성경을 안 믿어. 회개한다고 죄가 사해져?” 
선배는 말할 때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하잖아’라고 말하고, 나는 말할 때마다 ‘내가 알기로는, 우리 장로교회는, 우리 목사님은…’이라고 말했다. 선배는 무엇을 말하든지 성경 말씀을 찾아 손가락으로 짚어가면서 내게 보여주었다. 성경을 그렇게 빠르고 정확하게 찾는 사람은 그때까지 만나본 적이 없었다. 나는 기가 꺾였고 그 순간 성경을 믿고 있지 않던 내 모습이 보이면서 나도 모르게 “맞네요. 그러네요. 죄가 없네요. 거룩하네요.” 하였다. 그날 내게 복음을 전해준 선배는, 지금 기쁜소식안동교회에서 사역하는 이충학 목사님이시다.

하나님의 섭리 속에 내가 있었다
요한복음 1장 29절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말씀은 늘 내가 외우고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말씀이었는데, 그날 내 마음에 비친 이 말씀은 나를 의롭게 하신 하나님이 주신 한 줄기 빛이 되었고, 나도 마음에서 ‘나는 의인입니다’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늘 ‘구원받은 죄인’ ‘거듭난 죄인’이라는 모순된 신앙을 가지고 막연한 삶을 살면서 혼돈된 신앙생활을 해왔는데, 이제는 영원한 의가 들어와서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누구 앞에서도 당당하게 ‘나는 의인’이라고 외칠 수 있게 되었다. 그토록 찾았던 하나님의 영원한 의를 찾고 보게 된 것이다. 할렐루야! 
1985년 11월 22일! 그날은 내 인생에 가장 기뻤던 날, 바로 내가 구원받은 날이다. 구원을 받고 나서야 에베소서 1장 1~3절의,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려고 창세 전에 우리를 택하시고, 그 사랑 안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셨다’는 말씀이 믿어졌다. 
하나님은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조종사가 되려고 했던 나의 꿈을 꺾으시고 실패하게 하시고 넘어지게 하셔서, 나를 강도 만난 자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거반 죽은 자로 만드셨다. 바로 내 영혼을 구원하시려고 그 교관님을 사용하신 것이었다. 구원의 복음을 듣고 나서야 하나님이 기쁘신 뜻대로 이미 나의 모든 길을 예비해 놓으셨음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의 섭리 속에 내가 있었음을 깨닫게 되면서 마음 중심에서 그 교관님을 용서할 수가 있었다.
에스겔 17장에 나오는 ‘독수리와 포도나무의 비유’를 읽으면서, 하나님이 내 인생에 큰 독수리를 보내셔서 레바논 백향목처럼 높이 솟아 있던 나의 자만심과 교만을 꺾어 주셨다는 마음이 들었다. 이제는 약속의 땅인 교회 안에 심겨져 있는 포도나무처럼, 맡겨진 자에게 인도를 받으면서 영적인 귀한 열매를 맺어가는 복된 삶을 허락하신 것이다.

복된 직분을 주신 주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며
얼마 전, 학창 시절 동고동락했던 친구가 연락을 해왔다. 전투기 조종사, 민간항공 조종사를 거쳐 지금도 여객기 조종사로 일하고 있는 친구가 내 소식을 듣고 연락을 준 것이다. 그 친구는 내가 살고 싶어 했던 조종사의 삶을 그대로 살고 있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내 인생을 마치 베드로를 이끄시듯 인도하셨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처음 만난 날, 밤이 맟도록 수고했으나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의 말씀을 의지하여 그물을 내렸다. 그것처럼 하나님은 내 인생에도 이해할 수 없었던 사건이나 문제를 만나게 하시고 그 일들을 통해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세계를 알게 하셨다. 말씀만 의지하는 삶을 살게 하시려고 나를 비워주신 것이 너무 감사하다. 
하나님의 뜻을 모를 때에는 삶이 너무 괴롭고 원망과 고통뿐이었다. 그런데 이같이 큰 구원을 주시려고 나를 창세 전부터 택하시고 예정하셔서 하나님은 복음을 가진 선배를 군대에서 만나게 하시고, 극동방송에서 박옥수 목사님이 말씀을 전할 수 있게 하셨다. 그래서 여리고 성처럼 굳게 닫혀 있던 내 마음이 방송설교 말씀을 통해 열리면서 복음을 들을 수 있었다. 
인간의 의로 가득 찬 나머지, 말씀의 진리 앞에 강퍅하고 교만했던 내 마음을 하나님께서 부수어주셨다. 그리고 당신의 말씀을 그대로 듣고 받아들일 수 있게 마음 밭을 갈아주셨다. 복음의 값진 삶을 살 수 있도록 이끌어가시고 오늘날 수많은 사람을 복음으로 살리게 하는 복된 직분을 주시려고 내 삶을 이끌어주신 주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린다.

 


2024년 올해에는 브라질 김범섭 선교사의 간증을 연재합니다. 1989년 의정부에서 사역을 시작한 김 선교사는 여수와 부산을 거쳐 해외로 파송되었습니다. 1998년 1월 15일, 브라질에 첫 발을 디딘 이래로 지금까지 26년째 선교하고 있습니다. 현재 브라질에는 10개의 교회에서 9명의 선교사와 4명의 현지인 사역자가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브라질 교회를 위해 많은 관심과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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