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가인의 제물과 아벨의 제물
[설교] 가인의 제물과 아벨의 제물
  • 글 | 박옥수(기쁜소식강남교회 목사)
  • 승인 2024.01.11 08: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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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월호 기쁜소식
믿음에 이르는 길_창세기 강해(11편)

성경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선물이다. 특별히 창세기에는 빛나는 보석들이 무수히 숨겨져 있다. 미국 LA에 있는 ‘Radio Korea’에서 5년 동안 방송된 박옥수 목사의 <창세기 강해>가 이후 여섯 권의 책으로 출간되었다. <창세기 강해>에서 하늘의 보석들을 하나하나 발견해 가는 동안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빛나고 아름다운 세계가 점점 광활하게 펼쳐진다. 책에 실린 내용들 중 일부를 선정하여 연재한다.  

 

오늘은 에덴을 떠난 아담의 두 아들 가인과 아벨에 대해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창세기 4장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담이 그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잉태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이었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이었더라.”(창 4:1~2)
여기에 아담의 아들 가인과 아벨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기도와 헌금을 드리고 예배를 드리면 다 받으셨다고 생각합니다만, 하나님께서는 이 이야기를 통해서 어떤 제사는 받고 어떤 제사는 받지 않는지 가르쳐 주십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잘 모르니까 자기가 드린 제사는 무조건 하나님이 받으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창세기 4장에서 대비된 가인의 제사와 아벨의 제사를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가 아벨과 같은 방법으로 제사를 드리면 받으시고 가인과 같은 방법으로 제사를 드리면 받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분명히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드린 제사가 아벨의 제사와 같다면 하나님이 받으시겠지만, 가인의 제사와 같은 제사를 드렸다면 받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왜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고 아벨의 제사는 받으셨습니까? 아담이 가인을 낳았을 때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여 ‘가인’이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아담이 에덴에서 쫓겨난 뒤 외롭고 쉼이 없는 삶을 살다가 가인을 낳았을 때 굉장히 만족하고 기뻐했습니다. 그 후 둘째 아들을 얻었는데, 그 아들의 이름은 아벨이라고 지었습니다. ‘아벨’이라는 말은 ‘입김’ 또는 ‘허무’라는 뜻입니다. 이른 아침에 ‘호오-’ 하고 불면 잠시 있다가 사라지는 입김처럼 허무하게 없어진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담이 왜 자기 아들의 이름을 ‘입김(허무)’이라는 뜻으로 지었겠습니까? 아마 아벨은 병이 있었다든지 몸이 약해서 곧 허무하게 죽을 것같이 보였기 때문에 그 아이의 이름을 ‘허무’ 즉 ‘아벨’이라고 지었을 것입니다. 가인은 건강하고 튼튼하니까 땅을 파서 곡식을 뿌리고 추수하는 힘든 농사일을 했지만, 아벨은 힘이 없으니까 양 몇 마리를 양지쪽으로 몰고 나가서 발발 떨다가 저녁 때 몰고 들어오는 목축업을 했을지 모릅니다.
가인은 모든 일에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자기가 수고해서 얻은 땅의 소산으로 하나님께 드렸고,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지만 가인과 그 제물을 열납하시지 않았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이 왜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고 아벨의 제사는 받으셨는가?’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하나님께 정성이 부족하다고 늘 생각하는 사람은 가인이 하나님께 정성 없이 제사를 드려서 받지 않으셨다고 생각하고, 외식적으로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은 가인이 하나님 앞에 외식적으로 제사를 드리지 않았겠는가 추측합니다. 그러나 성경의 모든 문제는 성경에서 답을 얻어야 합니다.
가인이 하나님께 드린 제사를 하나님이 받지 않으신 이유는, 흙(땅)에서 난 소산으로 드렸기 때문입니다. 흙은 우리 육신, 인간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인간(육신)에게서 나오는 것은 어떤 것도 받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예배를 드릴 때 영(靈)으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드리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열심이나 사람이 보기에 아름답거나 귀한 것으로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려고 합니다.
그런 것들이 사람이 보기에는 아름답고 귀할지 몰라도, 하나님은 인간의 정성이나 감정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나왔는지를 보십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고도 눈물을 흘리며 예배를 드릴 수 있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뜨거운 눈물이, 헌금이, 정성이, 예수님에게서 나왔는지 아니면 인간에게서 나왔는지를 하나님은 분명히 구분하십니다.

히브리서 4장 12절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영과 혼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적인 부분과 혼적인 부분, 다시 말하면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인지 인간의 감정, 즉 혼에서 나온 것인지를 분명하게 구분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정성스럽게 하나님 앞에 나아와도 그것이 육에서 나온 것이라면 하나님은 결코 받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4장 24절에서,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으로 예배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감정이나 육신의 것이 아닌, 영으로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영으로 드리는 예배는 어떤 것입니까? 거룩해 보이고 엄숙해 보이는 것이 영으로 드리는 예배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죄를 씻음 받고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영접해서 그 영으로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일은 ‘영접 기도’를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모든 죄가 씻어져야만 예수님이 우리 마음에 임하십니다. 죄가 다 씻어져서 예수님이 우리 속에 들어와 우리를 이끄실 때, 우리가 예수님의 영으로 기도하고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가인은 땅의 소산, 즉 육에서 나온 것으로 드렸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 제사를 받지 않으셨습니다. 그렇다면 아벨의 제사는 왜 받으셨습니까? 그는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습니다. ‘양의 첫 새끼’는 맏아들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름’은 ‘성령’을 가리킵니다. 아벨이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다는 것은, 아벨은 가인처럼 자신도 없고 부족하고 연약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자기 행위를 가지고 나아간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해서 나아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든 것은 받지만 인간의 것은 받으실 수 없습니다. 양의 첫 새끼와 기름은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하나님은 예수님을 받으시기 때문에 아벨의 제물을 받으실 수 있었습니다. 
때때로 속에서 뜨거운 마음이 일어나면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거나 귀한 예물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볼 때 아무리 아름답고 엄숙하고 정성스러워 보여도, 인간에게서 나온 것이라면 하나님은 받으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서 나온 무엇을 받으신 적이 없습니다. 육의 것은 이미 저주를 받은 것이기에, 우리가 볼 때는 깨끗해 보여도 모든 죄악과 더러움에 오염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것만을 받기 원하십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더럽고 악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 사함을 받고, 마음에 예수님을 영접해서 예수님으로부터 오는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고 기도를 드리고 헌금을 드려야만 하나님은 받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없이는 정성이 아무리 지극할지라도 하나님이 받으실 수 없다는 사실을, 하나님은 가인과 아벨의 제사를 통해서 우리에게 분명하게 보여주고 계십니다.
우리 것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하나님에게는 무익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나온 것이라야 합니다. 죄 사함을 받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은 상태에서 하는 모든 것은 무익한 일입니다. 아벨처럼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와서 죄를 사함 받고 예수님이 흘리신 보혈로 여러분의 죄가 눈처럼 씻어지면, 예수님이 여러분의 마음에 임하십니다.
저는 많은 사람의 신앙생활을 인도하면서, 사람의 노력이나 열심은 얼마 가지 못해서 무너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영원히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했을 때, 사람이 자신의 노력이나 열심으로 하던 것들을 그만두는 것을 보았습니다. 죄인임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앞에 나와서 죄 사함을 받고 성령을 모셔들여서 영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섬길 때 삶이 변하고 은혜 속에 깊이 잠기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한다 해도 인간에게서 나오는 것은 육신일 뿐입니다. 예수님이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요 3: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리 아름다워도 육은 육입니다. 육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해서 예수님으로 말미암은 신령한 예배를 드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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