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내 삶과 영혼에 가장 복된 나라, 브라질
[라이프] 내 삶과 영혼에 가장 복된 나라, 브라질
  • 글 | 김범섭(브라질, 기쁜소식상파울루교회 선교사)
  • 승인 2024.04.09 09: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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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호 기쁜소식
선교사 수기 4편_브라질 선교 초기 이야기

리브가가 준비해준 것만으로 축복을 받은 야곱처럼, 나도 하나님 은혜가 아니면 웃을 수조차 없는 사람이었다. 하나님은 나를 당신 아니면 의지할 것이 없는 위치로 세워가셨고, 브라질은 내 삶 내 영혼이 ‘하나님을 섬기는 삶’이 아닌, ‘하나님만 섬기는 삶’으로 바뀌게 해준 가장 복된 나라가 되었다.

 

브라질은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큰 국토를 가진 나라로, 영토와 인구가 남미 대륙의 절반을 차지한다. 브라질을 제외한 남미의 다른 나라들은 스페인어를 사용하지만, 브라질은 포르투갈어를 사용한다. 지금까지 전쟁도 없었고 인종차별도 없으며 지진도 없는 나라이다. 종교는 가톨릭이 중심이었지만, 지금은 개신교가 점점 커지고 있다.

선교지에서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였다
선교지에서 만난 하나님은 나를 철저하게 벗겨내고 비우는 일들을 해 가셨다. 고린도후서 1장 9절에서 사도 바울이 “우리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라고 간증했듯이, 한국에서 나름 많은 것을 경험하고 할 수 있었던 나를 하나님은 이곳에서 스스로 아무것도 못 하는 자로 만드셨다. 마치 보지 못하는 소경이요, 듣지 못하는 귀머거리요, 말하지 못하는 벙어리처럼 말이다. 
나는 나를 선교사로 보낸 교회와 하나님의 종을 절대로 실망시키지 않고 기쁘게 해드리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로 흘러갔다. 시간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형편 앞에서 나는 힘이 빠져 갔다. 처음에는 ‘그럴수록 마음을 가다듬고 말씀을 의지해야 한다’는 생각에 발버둥을 쳤다. 그런 내 모습이 저주받은 에서 같았다. 에서는 사냥에 익숙했기에 스스로 아버지의 요구를 얼마든지 들어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 에서의 모습이 마치 열심과 의지로 달려가고 있는 내 모습 같았다. 나는 잘하기는커녕 오히려 나를 믿음으로 보낸 목사님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고, 큰 구덩이와 같은 어려움에 빠지면서 생각이 고립되고 감옥에 갇힌 듯 답답하게 지냈다. 

물 마시기도 자제해야 했던 남의집살이
상파울루에 도착하던 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한 한인 가정과 연결되었다. 비록 임시였지만, 그 가족은 우리에게 안방을 내주고 자신들은 거실에서 지냈다. 가능하면 빨리 집을 얻어서 나가야 했지만, 집을 구하는 것도 보증인이 두 명이나 있어야 하는 등 필요한 조건을 맞추기 쉽지 않았다. 돈만 있어서 되는 것이 아니었다. 
한국에서만 살았던 나에게 브라질의 복덕방은 속이 터질 듯 너무도 답답했다. 일 처리가 오래 걸리는 건 기본이고, 진행이 너무 늦어 막연히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한국식 빠른 일처리에 익숙해져 있던 내게는 마치 고문 같았다. ‘인내’라는 두 글자를 뼈저리게 실감하는 시간이었다. 
가족 넷이 기내 가방만 가지고 남의 집 안방에서 지내는데 집까지 구해지지 않으니, 시간이 지날수록 그분들에게 미안해지기만 했다. 화장실에 가려면 거실을 통과해야 했기 때문에, 밤중에는 최대한 화장실에 가지 않기 위해 물 마시는 것도 자제해야 할 만큼 남의집살이는 결코 쉽지 않았다. 

입국 54일 만에 하나님이 얻게 하신 집
브라질에 도착한 뒤 할일도,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도 많지 않았기에 나는 주로 성경 보는 시간을 많이 가졌다. 앞에 이야기한 대로 당시 가장 어려웠던 건 집을 얻는 일이었다. 어느 날 창세기 8장을 읽는데, 노아의 방주가 아라랏 산에 머물렀지만 창일한 물로 인하여 노아와 가족들이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올 수 없었다. 40일이 지나서야 창을 열고 까마귀를 내어놓았는데 돌아오지 않자, 노아는 비둘기를 내보내 지면에 물이 감한 여부를 알고자 했다. 비둘기는 접족할 곳을 찾지 못해 방주로 돌아왔고, 노아가 7일을 기다려 비둘기를 다시 내보내자 감람 새 잎을 입에 물고 돌아왔다. 노아는 물이 감했다는 기쁜 소식을 알 수 있었다. 하나님은 우리 가족이 상파울루라는 목적지에 도착했지만 가져온 짐을 풀지도 못하고 창고에 보관한 채로 한 달도 넘는 긴 시간을 기내 가방만 갖고 지내게 하셨다. 
성경을 읽으면서 ‘비둘기가 감람 새 잎을 입에 물고 오듯 하나님이 내게 집 열쇠를 손에 쥐게 하시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우연히 내가 머물던 집에서 50m 정도 떨어진 곳에 아파트를 임대한다는 팻말이 붙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주인아주머니를 만나서 아파트를 얻는 부분을 물었더니 흔쾌히 바로 들어와서 살 수 있게 허락하고 집 열쇠를 내게 넘겨주었다. 우리가 상파울루에 도착한 지 54일이 되는 날이었다. 
이처럼 분명하고 세밀한 하나님의 인도하심 앞에 우리를 맞아 주었던 한인 가정 사람들도 신기해하고 감사해했다. 우리가 살게 된 곳이 아파트였기에 그 안에서 예배를 드릴 수는 없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처음 연결되었던 한인 가족이 자신들의 집 지하실에서 주일 예배와 모임을 가질 수 있게 해주었다.

불법 체류자에서 영주권자로…, 다시 ‘여호와 이레’를 경험하고
우리 가족은 브라질에 들어올 때 ‘여행 비자’를 받고 입국했는데, 15일이 지나자 비자가 만료되었다. 한 번 연장한다고 해도 돈만 날릴 뿐이지 15일이 지나면 다시 불법 체류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이러나저러나 불법 체류자가 될 바에야 차라리 비자를 연장하지 않고 처음부터 불법으로 체류하는 수밖에 다른 묘안이 없었다. 
1998년 1월 15일에 브라질에 입국한 우리 가족은 1월 30일 이후 불법 체류자가 되었다. 불법 체류자 신분으로는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당시 가장 시급한 일이 예배당으로 쓸 수 있는 집을 구하는 일이었지만, 불법 체류자인 내 명의로는 집을 얻을 수 없었다. 전화도 내 이름으로 개통할 수 없었다. 브라질에서 지내려면 반드시 영주권이 있어야 했다.
브라질에서는 10년에 한 번씩 간혹 사면령이 내려진다. 우리는 그런 정보조차 알지 못하고 입국한 상태였다. 그런데 우연히 한인 신문을 보던 중, 9월에 당시 페르난도 대통령이 모든 불법 체류자에게 영주권을 주는 사면령을 선포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더 놀라운 것은 ‘그해 5월 이전에 입국한 사람들만 사면을 받는다’는 조건이었다. 
만약 우리가 6월에 들어왔다면, 사면령을 내렸어도 해당되지 않아 영주권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미리 아시고 우리가 1월에 들어올 수 있게 이끌어 주신 것이다. 분명하고 세밀한 하나님의 인도를 생각하면 지금도 너무 신기하고 감사하다. 그해 우리 가족 네 사람은 약간의 세금만 내고 브라질에 영구히 거주할 수 있는 영주권을, 사면령을 통해 얻을 수 있었다. 분명하신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이셨다. 

그 집에서 쫓겨난 일도 하나님이 이끄시는 과정이었다
먼 나라에 가서 시차에 점차 적응하듯, 브라질에서 한 달 두 달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 가족은 상파울루의 삶에 조금씩 적응해 가고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우두커니 앉아 있다가 오긴 했지만, 아이들도 청강생으로 학교에 다닐 수 있었다. 우리 부부도 선교사에게 언어를 가르쳐주는 학교에 입학해서 생소했던 포르투갈어를 조금씩 배워갈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와 가족처럼 지내던 한인 가족 집에 한국에서 손님이 한 분 오셨다. 그분은 한국에서 기성 교회에 다니는 집사님으로, 예전에 브라질에서 살면서 이 가족과 친하게 지냈던 분이었다. 사업차 다시 브라질에 방문한 그분은 그 가족 집에 잠시 머물게 되었다. 우리가 그 집에서 예배를 드리니까 처음에는 좋아하면서 참석했는데, 우리가 기쁜소식선교회 소속이라는 말을 듣고는 마음을 닫았다. 그리고 그 가족에게 우리에 대해 나쁘게 말해 불신하게 만들어서 우리 사이를 이간했다. 
그 가족과 거의 10개월을 한식구처럼 지냈는데, 그 한 사람의 방문으로 사탄이 역사했다. 불신의 소리를 들은 주인아주머니는 결국 그 집 가정부를 시켜 우리가 사용하던 교회 용품을 모두 우리 아파트 앞에 가져다놓게 했다. 우리를 쫓아낸 것이다. 아파트 초인종 소리에 내려가 보니, 그 집에서 사용했던 전자 오르간, 칠판 등 예배 용품이 모두 쌓여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누구보다 가깝게 가족처럼 웃고 지냈는데 불과 며칠 사이에 이게 무슨 일인가. 그 상황을 보면서 나는 너무나 큰 충격에 빠졌다.
나는 쉽게 잠이 드는 사람이었는데 그날부터는 잠이 오지 않았다. 3일을 내리 잠도 제대로 못 자며 지냈다. 당시에는 배신당했다는 큰 상심에 앞이 막막하고 너무 괴롭고 속상했다. 그러나 어찌되었든 그 일은 하나님이 우리를 그곳에 더 이상 머물지 못하도록 하시는 또 다른 훈련이었다. 마치 어미 독수리가 아기 독수리에게 비행 훈련을 시키듯, 우리로 하여금 안주하던 둥지 밖으로 나와 하늘을 날 수 있게 가르치시는 과정이었다. 

발 디딜 틈조차 없는 바퀴벌레…, ‘하나님이 이렇게 하셨구나!’
이후 하나님은 우리를 ‘봉헤찌로’라는 한인촌으로 이사하게 하셨다. 당시 우리는 아파트에 살고 있었는데, 아파트에서는 예배를 드릴 수 없기에 예배당으로 사용할 수 있는 집을 얻어야 했다. 우리는 많은 한인들을 만나 복음을 전했지만, 사람들이 우리 선교회 이름을 들으면 우리를 다시 만나려 하지 않고 피했다. 집을 얻으려면 누군가 우리를 위해 보증을 서줘야 하는데, 그런 상황에서 우리를 위해 보증 설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복덕방 주인에게 말했다. 
“저는 하나님 외에는 다른 보증인이 아무도 없습니다.” 
그렇게 지내다 어느 집을 방문했다. 그 집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아내가 기절할 듯 놀라 뒷걸음질을 쳤다. 엄청나게 많은 바퀴벌레가 배를 뒤집고 죽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 광경을 보면서 나는 ‘하나님이 이렇게 하셨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이 그 집에 바퀴벌레를 가득 깔아 두어 다른 사람이 그 집을 얻고 싶지 않게 하셔서, 우리가 올 때까지 오랜 시간 비워 두셨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 집은 전에 어떤 사람이 세를 얻어 작은 식당으로 사용하던 집이었다고 한다. 집을 비우고 나가면서 해충 방역을 해두려고 바퀴벌레 약을 살포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하수구에 있던 바퀴벌레까지 그 집에 있던 바퀴벌레가 모두 밖으로 나와 죽은 것이다. 복도, 거실, 방 할 것 없이 온 집안이 바퀴벌레 사체로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그래서 아무도 그 집에 들어오려고 하지 않은 것 같았다. 
오랫동안 집이 나가지 않았기 때문에, 집주인은 우리에게 보증인을 세우는 대신 3개월치 집세를 먼저 내는 조건으로 까다롭지 않게 집을 계약해 주었다. 우리 식구가 살 수 있는 방과 부엌, 거실, 주차장…. 무엇보다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공간까지 우리가 당장 예배당으로 사용하기에 더없이 좋은 구조였다. 하나님이 우리를 이곳으로 이사 오게 하신 후, 작지만 ‘상파울루 기쁜소식교회’라는 간판도 달 수 있게 해주셨다. 한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동네라 한인들을 자주 만났지만, 우리를 이단시하는 이민 사회의 특수성 때문에 우리를 대하는 사람들의 시선이 곱지 않았다. 우리를 무시하고 핍박하고…. 본의 아니게 우리 교회가 상파울루 한인 사회에서 점점 유명해졌다.

감옥 같은 형편에서 말씀만이 기쁜 소식이었다
상파울루에 발을 디딘 지 거의 1년이 되어가면서 처음으로 맞이하는 크리스마스는 내 평생 잊을 수 없는 성탄절이었다.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성탄절임에도 불구하고 예배당에는 우리 가족 외에 아무도 없었다. 여기서 10년을 선교해도 아무도 구원받을 것 같지 않았고, 언어를 배우는 부분에도 한계가 찾아왔다. ‘브라질, 상파울루’가 내 마음에서는 ‘우라질, 썅파울루’가 되어버렸다. 내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져 갔고, 일분일초도 브라질에 머물고 싶지 않았다. 선교 나올 때 77kg이었던 체중은 14kg이 빠져 옷들이 너무 헐렁해서 제대로 입을 수 없었다. 삶도 마음도 지친 나머지, 극심한 스트레스로 하루하루 아내와 다투기 일쑤였다. 그렇게 짙어져만 가는 실망과 절망의 그림자가 나를 덮어갔다. 
한편으로는 ‘돈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영주권 문제나 집을 얻는 일 등 하나님이 모든 것을 도우셨는데, 왜 사람들이 구원받고 교회에 세워지는 일은 허락지 않으시는 걸까? 왜 사람들이 우리 선교회를 좋아하다가도 자꾸 떨어져 나가게 하시는 걸까?’ 하는 의문이 찾아와 날 더 힘들게 했다. 마치 감옥 안에 갇혀 있는 것 같은 내 마음은 아무런 소망의 빛줄기도 찾을 수 없어서 끙끙 앓고 신음할 뿐이었다.

 

한 줄기 빛이 된 말씀 “놋뱀을 쳐다보면 살리라”
그러던 어느 날, 한국에서 소포가 왔다. 박옥수 목사님의 주일 예배 말씀이 녹음된 테이프였다. 요즘은 우리 선교회의 말씀을 인터넷으로 자유롭게 들을 수 있지만, 1999년 당시에는 주로 한국에서 우편으로 보내주는 카세트테이프를 통해서 박 목사님의 주일 말씀을 들었다. 마음이 너무 곤고해서 박옥수 목사님의 말씀을 들었다. 목사님은 민수기 21장에 나오는 놋뱀에 관한 말씀을 전해 주셨다. 내가 잘 알고, 또 전하기도 많이 했던 말씀이었다. 그런데 그날은 귀에 들리는 그 말씀이 너무나 크게 마음에 다가왔다. 불뱀이라는 형편에 물려서 죽어가던 내 마음에 “놋뱀을 쳐다보면 살리라.”라고 외치는 듯했다. 
말씀이 나에게 유일한 기쁜 소식이 되어 주었다. 그리고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 또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분명하고 똑똑하게 보여주었다. 그때까지 형편을 바꾸려고 애쓰던 내 모습이 마치 불뱀에게 물리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것처럼 느껴졌다. 말씀은 그 모든 것이 부질없음을 깨닫게 해주었다. 형편에 반응하고 고통하며 살아왔던 내 마음에 이 약속의 말씀은 한 줄기 빛이 되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삶에서 하나님‘만’ 섬기는 삶으로 
참 놀라운 것은, 그 후로도 형편은 여전히 어려웠지만 내 마음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사실이다. 말씀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그리고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겠다’는 마음으로 나를 다시 일으켜 주었다. 하나님은 나를 브라질이라는 광야로 몰고 오셔서 내가 익숙하게 할 수 있었던 모든 일들이 당신 없이는 무익한 것이었음을 가르쳐 주셨다.
야곱은 오로지 어머니 리브가가 준비해준 것만으로 축복을 받을 수 있었다. 야곱이 입은 축복은 자신의 능력이나 조건에서 나온 것이 절대 아니었다. 나 또한 오직 교회와 인도자가 준비한 것, 말씀과 인도함으로만 살게 하시려고 하나님이 그때까지 일을 안 되게 하신 것이었다. 나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웃을 수조차 없는 사람이었다. 하나님은 나를 당신 아니면 의지할 것이 없는 위치로 세워 가셨고, 오직 말씀만 믿고 가는 길을 걷게 하셨다. 
브라질은 내 삶 내 영혼을 ‘하나님을 섬기는 삶’이 아닌, ‘하나님만 섬기는 삶’으로 옮겨준, 내게 가장 복된 나라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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