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고공화국수도 브라쟈빌전도여행
콩고공화국수도 브라쟈빌전도여행
  • 장제형
  • 승인 2006.08.12 22: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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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콩고민주공화국 기쁜소식 킨샤사 교회에서 인사드립니다. 지난 8월 7일부터 11일까지 저희는 콩고강 건너편에 있는 또 다른 콩고, 콩고 공화국(Républic du Congo:인구 350만명,면적 342,000㎢)의 수도 브라쟈빌(인구:60만명)에 한주간 전도여행을 다녀왔습니다.

8월 7일 월요일
아침 7시, 처음 가는 전도여행인지라 우리는 설레는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김종덕목사님께서 ‘주님께서 당신의 이름을 위해 일하실 것이며 은혜스러운 여행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정말 주님이 어떻게 일하실지 기대가 되었다. 교회에 가끔 나오는 한 자매님의 친척이 콩고공화국의 수도인 브라자빌에 살고 있는데 감사하게도 그분과 연락이 되어 우리를 맞이해 주기로 했다. 비록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두 나라가 위치해 있지만, 우리는 개인당 80달러의 비용을 지불하고 비자를 받았고, 두 나라를 연결하는 다리가 하나도 없어서 배를 이용하여 강을 건너야만 한다. 8시 30분경 킨샤사항구에 도착, 10시에 출발하는 브라자빌행 티켓을 샀다. 배가 3종류가 있는데 우리는 처음에 중급배(왕복$20)를 이용하려 했지만 주님은 우리에게 가장 저렴한 배(왕복$12)를 이용하게 하셨다. 처음에는 그냥 단순히 배 티켓만 사면 되는 줄 알았는데, 막상 들어가보니 TAX도 내고, 여러가지 돈을 요구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데 우리가 선교사라고 소개하고 그 분들께 은혜를 구했을 때 여러 사람에게 은혜를 입었다. 배에 들어가기 까지 거의 10번 정도 여권, 비자, 티켓 등을 검사했는데 마침내 은혜스럽게 배에 올라 탈 수 있었다. 배 안에는 상인들이 제일 많았다. 이곳 킨샤사에서 상품을 구입하여 브라자빌에 판매하는 많은 상인들, 휠체어를 탄 많은 장애인들..돈이 없어서 몰래 강으로 헤엄쳐와서 배에 타는 사람들..참 사람들이 불쌍해 보였다. 어떤 사람들은 티켓과 통행허가증 없이 배에 탔다가 군인이나 경찰들에게 잡혀서 구타를 당하기도 하고..보기에 부담스러운 광경들도 많았다. 30분 정도 후에 브라자빌에 도착해서도 비슷한 혼란이 있었고 여러 차례 몇가지 비용을 지불해야했지만 감사하게도 우리를 마중 나오신 Marcel 아저씨를 만나서 도움을 입을 수 있었다.

우리는 콩고공화국을 공산국가로만 알고 있었는데, 막상 도착해보니 참 자유롭고 평화스러운 나라였다. 그런데 근간에 석유가 부족하여 주유소에 택시 수십대가 줄을 지어 석유를 기다리는 모습은 정말 예상 외였다. 석유가 나는 나라이지만 정유시설이 없어서 정제유를 외국에서 수입해서 사용하는데 공급이 원활하지 못한 것이다.

택시를 타고 시내를 벗어나 비포장도로를 조금 달려 Marcel 아저씨 댁에 도착했다. 이분도 무척 가난하게 사는 분이어서 우리를 맞는 것을 무척 망설이고 부담스러워 했는데 하나님께서 그 분의 마음을 바꾸어 주셔서 우리가 그 집에 머물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셨다. 6식구가 작은 방 두개, 거실 하나에 살고, 6가구가 공동으로 이용하는 야외간이재래식 화장실 하나와 함석으로 만든 야외간이 샤워장 한 개, 그 곳에 40달러 월세로 사는데 우리는 거실에서 거하게 되었다. 이 분은 경제적인 어려움도 컸지만 특히 큰아들 때문에 많이 어려워하셨다. 큰 아들이 2살 때 말라리아에 걸렸는데, 말라리아 균이 뇌를 공격하면서 정신과 신경에 이상이 와 버렸다. 22살의 다 큰 청년이 되었지만 실제 정신연령은 2살 정도 밖에 안 된다. 이 아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Marcel 아저씨 마음에 일을 많이 하신 것 같다.
이분의 직업은 사진기사인데 콩고 내전 전후로 사진도구들을 모두 잃어버렸고 2년 전 까지는 한국인이 경영하는 사진현상소에서 일했는데 주인이 외국으로 떠나가면서 직장 없이 부인이 시장에서 벌어오는 적은 돈으로 생활을 하고 있었다. 정말 복음 없이 사시는 Marcel 아저씨 가족을 볼 때 무척 안타까웠다.
<사진1 Arcel과 복음교제>


오후에는 Marcel씨의 둘째 아들 Arcel과 함께 나가서 길거리에서 점심을 간단하게 해결한 뒤, 집 근처를 구경했는데 천주교신학교를 방문했다. 땅이 무척 넓고 나무도 많고 정리가 잘 되어있으며 공원처럼 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곳이었다. 이 나라는 프랑스의 식민지였는데 천주교 세력이 무척 큰 것을 엿볼 수 있었다. 그 곳에서 선교사님께서 Arcel에게 말씀을 전하셨다. 해질녘엔 집 근처에 말씀을 듣고 싶어하는 아주머니가 있어서 방문하여 말씀을 전했다. 이곳 콩고 사람 대부분은 종교성이 많아 보였다. 그래서 말씀을 나누자고 하면 거부하지 않고 말씀을 들으려고 한다. 그런데 말씀을 듣는 것 같지만 실제 그들의 영혼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이 많았다. 그냥 형식으로 교회에 다니고 세례 받으면 천국에 가는 것으로 착각한다. 어쨌든 우리는 되도록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사람들을 만났다. 이곳에는 1993년, 1996년, 그리고 1998년 내전이 있었다. 이 전쟁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집과 가족, 재산을 잃었다. 집이 없어서 폐쇄된 공장건물에 들어가서 집단으로 사는 사람들도 정말 많았다.

첫날 저녁 Marcel씨 집에서 저녁을 먹고 가족들과 말씀을 나누었다.

<사진2 석유를 사려고 기다리는 차들>


8월 8일 화요일
우리는 Marcel씨와 미니버스를 타고 시내구경을 갔다. 타운에는 도로가 잘 정리되어있고, 아프리카에서 보기 힘든 신호등, 공중전화박스(사용못함)도 있으며 대중교통이 킨샤사에 비해 무척 잘 되어있었다. 내전으로 인해 파괴된 건물들이 여럿 있고 여기 저기 전쟁의 흔적들이 많이 남아 있는데 경제가 어려워 복구를 못하고 방치되어 있었다. 이곳도 정말 복음 없이는 소망이 없는 나라다. 내가 지내고 있는 킨샤사와 참 많이 달라 보였다. 타운구경을 하면서 아저씨가 아는 몇몇 사람들을 만나 말씀을 나눌 약속을 하였다. 그리고 차를 타고 이동하여 모래가 참 많은 길을 한참 걸어서 아저씨가 아는 분(간호사)이 경영하는 조그마한 병원을 방문하여 그곳 간호사들과 복음교제를 했다. 그분들도 역시 종교심이 많지만 구원은 받지 못하신 분들이었다. 처음에는 자신들의 지식, 생각을 이야기했는데, 계속해서 말씀을 보여드리면서 우리가 예수님의 피로 말미암아 내 행위와 상관없이 의인이 된 사실을 전했다. 감사하게도 복음을 그냥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것을 보면서 정말 감사했다. 다시 이 분들을 언제 만날 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까, 복음을 전해야겠다는 마음이 자동으로 들었다.
다시 이동하여 약속된 다른 집에 가서 복음을 전했다. 남편은 사업가, 부인은 목사인데 선교사님이 말씀을 전하고 우리도 간증을 하였는데 복음을 받지는 않았다.
<사진3 총알맞은건물>


8월 9일 수요일
아저씨 둘째아들 Arcel과 집을 나섰다. 간이식당에서 빵과 대접커피로 아침을 해결하고 한 집을 방문해서 말씀을 전했다. 선교사님은 불어로 10여명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나는 링갈라어 통역을 통해 한 할머니에게 복음을 전했다. 오후에는 대학교와 야외스타디움, 재래식 시장을 방문하여 구경도 하고 말씀도 전했다. 저녁에는 아저씨와 한 울타리에 사는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하고 저녁을 먹은 후 아저씨 뒷집에 사는 레베카 아주머니를 방문했다. 그분은 선교사님과 두번 교제를 나누었었는데, 처음에는 그냥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들으시려고
하다가 나중에는 말씀 앞에 자기가 죄인인 부분을 인정하고 선교사님께서 전하신 복음을 받아들였다.

<사진4 복음전한 후 사람들과 함께>


8월 10일 목요일
오전에 두 집을 방문하여 복음을 전하고 아저씨와 콩고강에 갔다. 우리가 사는 킨샤사는 강가에 군인, 경찰들이 경비를 서고 있어 강에 접근하는 것이 자유롭지 못하고 사진촬영도 못하는데 이 곳 브라쟈빌은 자유롭고 평화스러웠다. 오후에 한 부인이 우리를 초대하여 생선과 푸푸, 뽄두, 밥, 과일쥬스를 배부르게 먹고 복음을 전했다.
저녁에는 주로 아저씨 가족 분들과 교제를 나누었다. 아저씨 아들인 Arcel, 그리고 조카인 Ohvi, Benedit 에게 복음을 전했다. 이 친구들은 정말 순수했다. 전하는 말씀을 그냥 땅이 물을 흡수 하듯이 받아들이는 것을 볼 때 너무 감사했고 친구 같아서 마음을 많이 열었다. 마음이 열리니까 우리가 전하는 말씀도 자연스럽게 들어갈 수 밖에 없었다. 이곳에 하루 빨리 교회가 세워졌으면 하는 마음이 생겼다.
이날 저녁에는 정신이 안 좋은, 아저씨의 큰아들 야레니와 교제를 했다. 그는 말은 어느 정도 하지만 실제로 이해하는 능력이나 생각하는 능력은 많이 떨어졌다. 그래서 복잡하게 말고 주일학교 말씀 전하듯이 바로 그냥 예수님이 우리 모든 죄를 십자가에서 끝내셨다는 부분에 설명했는데, 이해를 하지 못했다. 몇 번이고 반복해서 전했는데, 계속해서 헛소리만 했다. 정말 어찌 할 바를 몰랐다. 아무리 복음을 잘 전한다 해도, 아무리 말씀을 잘 듣는다 해도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한 사람도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마음이 너무 강하게 들었다. 너무 불쌍한 마음이 들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복음 전하는 것 밖에. 이 친구도 비록 이렇게 살고 있지만 죽으면 지옥에 갈텐데..세상에서도 불쌍한데 지옥까지 가면 얼마나 더 비참할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알아듣든지 못 알아듣든지 계속해서 전했다. 결국에는 말을 따라 하라고 까지 하면서 말씀을 전했다. 나중에는 감사하게 자기에게 죄가 없다고 했다. 비록 그가 표현은 잘 못하고, 정상이 아니지만 분명히 하나님께서 그의 말하는 것을 들으셨겠다는 마음이 든다. 실제로 예수님은 그의 죄를 다 가지고 가셨지만 지옥에 가는 이유가 믿지 않아서, 몰라서, 또는 듣지 못해서 가는 게 아닌가. 이 친구도 표현은 못하지만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남들에게 무시당하고. 정말 이 가족은 복음이 아니면 절대 소망이 없다는 마음이 들었다. 아버지인 Marcel 아저씨께서도 우리와 같이 동행하시면서 복음을 계속해서 들으셨고 마음에 받아들이셨다.

<사진 5 Marcel 아저씨 가족>


8월 11일 금요일 아침 우리는 아저씨 가족들과 사진촬영을 하고 아쉬운 작별을 하고 항구로 향했다. 브라쟈빌에서 지내는 동안 우리는 Marcel 아저씨를 통해서 이 나라에 대한 많은 이야기도 듣고 여러 사람들을 만나서 복음을 전했다. 많은 사람들이 말씀은 들으려고 하지만 복음은 쉽게 받지 않는 것을 보았다. 그래도 이 곳 사람들은 무척 순수하게 보인다. 분명히 하나님께서도 콩고공화국에 교회를 세우시는 것을 원하실 텐데 하루 빨리 하나님의 종과 교회가 이곳 브라쟈빌에도 세워졌으면 하는 바램이다.

콩고공화국 수도 브라쟈빌에도 교회가 세워져서 많은 콩고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많은 기도 부탁 드립니다. 나아가서 가봉, 중앙아프리카공화국에도 하루 빨리 교회가 개척되어 중앙아프리카지역에 주의 말씀이 충만하게 증거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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