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 치끌라요에서 만난 하나님
[페루] 치끌라요에서 만난 하나님
  • 송희림
  • 승인 2008.07.11 13: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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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에 오면서부터 난 항상 부담을 뛰어넘고 싶었고 믿음도 배우고 싶었지만 도전하진 않았다. 그러던 중 약 한달 전의 삐우라 집회에 목사님과 동행했다가 근처 지역인 치끌라요 교회에 남아 보름간 살게 되었다. 아무 일도 하지 않기엔 너무 긴 기간이라고 생각되어 전도사님께 어린이 집회를 하고 싶다고 얘기를 꺼냈더니 흔쾌히 마음 내키는 대로 준비하라고 대답해주셨다. 사모님과 함께 자매님 댁에도 다니고 죄사함 거듭남의 비밀도 읽는 등 이런 저런 일정 속에 시간이 지나가는 동안 두시간 짜리 시간표를 만들었다. 집회가 4일 남은 목요일 우리는 전단지를 주문하러 갔는데,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왜 이렇게 늦게 만드는지, 대체 언제 전단지를 나눠줄건지. 여쭤보니 토요일 하루 할거라고 하셨다. 전도사님 부부는 사역자면서도 다른 페루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시간 관념이 엉망이라고 속으로 판단이 되었다. 전단지를 주문하고 나자 어린이 집회를 하게 된다는 실감이 나면서 본격적인 준비의 필요성이 느껴졌다. 그래서 오후 내내 말씀을 준비했는데 왜 그렇게 어려운지, 밤이 되도록 헤매기만 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나자, 시간이 너무 모자라다는 걱정이 되면서 많은 시간을 흘려보냈다는 후회가 됐다. 구체적으로 하려고 하니 준비할 게 너무 많고 갑자기 일하기가 싫어졌다. 내가 얼마나 게으른지 스스로 알면서 내가 왜 집회 얘길 꺼냈을까? 그냥 15일 편하게 살다 갈 걸 뭔 부담을 뛰어넘겠다고... 머리를 잡고 한참을 괴로워하다가 마태복음 6장 33절 말씀이 생각났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이 말씀은 내가 페루에 올 때 봤던 말씀인데, 내가 하나님 의를 구한 건 아니지만 페루에 온 후 하나님은 내가 의를 구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드시고 그 후에 내 부족한 것들을 채우셨던 게 기억나면서 하나님의 의를 찾기 시작했다.

'하나님이 정말 어린이 집회를 기뻐하실까?
그야 어린이의 영혼도 사랑하시는 하나님이니까 기뻐하시겠지만.
진짜 하나님의 뜻인 지 확신할 수가 없는데.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믿음이 있는 것도 아니고,
괜히 하고 싶다고 말 꺼내서 하는 거 아닌가? 그냥 내 욕심인 것만 같은데.
내 욕심 맞는 것 같은데. 근데 하나님 기뻐하실 것 같은데.
하나님 기뻐하시나? 그냥 내 욕심일 뿐인가?'

그날 밤은 그렇게 잠들었다.

다음날 사모님이 어떻게 지내냐고 물으시길래 나도 도전 한 번 해보자 싶어서 꺼낸 집회 얘기지만 지금은 시간도 없고 말씀도 준비가 안 된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사모님은 아무리 열심히 해도 하나님께서 치시면 결과가 나쁠 수 밖에 없고, 하나님이 도우시면 결과가 좋을 수밖에 없다고 말씀하시면서 이번 어린이 집회는 시간이 너무 부족해서 하고 싶지 않았던 마음을 얘기하셨다. 하지만 전도사님의 마음을 받고나니 내가 일하고 싶지 않고 하나님 일하시는 걸 보고 싶어졌다고. 그러면서 처음엔 아무 것도 없었지만 하나님께서 물질을 허락하셔서 전단지도 만들 수 있었고, 바까스마요의 자매님들도 와주기로 전화했다는 것이다. 그 이야길 들으면서 눈물이 났다. 전에는 물질이 생겨도 전화가 와도 내게 말해주지 않으시고, 평소에 입덧이 심해서 기도회 때만 입을 여시던 분이 지금 내게 이 이야기를 하게 된 것은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으시고 사모님의 입을 통해 내게 하나님의 뜻을 가르쳐주시는 거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너무나도 하나님께 감사했다. 나는 내가 말을 꺼내서 어린이 집회를 하게 됐다고 생각했었는데, 전도사님의 마음이나 전단지를 만들 물질이 없었다면 집회를 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나님은 정말 이 집회를 기뻐하시고 벌써부터 일하고 계셨다. 이런 하나님을 찾지 않아서 전날 밤 괴로워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더 이상 집회는 내가 해야 할 일이 아니었다. 온통 부족하지만 하나님이 채우실 거라는 마음이 들고 말씀을 준비하는 데에 대한 부담도 내려졌다.




전단지 홍보를 나갈 때 나는 남아서 말씀을 준비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막상 나가니 정말 즐거웠다. 홍보할 때 봤던 아이들이 집회에 왔을 땐 정말 반갑고 기뻤다.



일요일 저녁 교사모임을 가졌다.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진행을 할 자매님 세 명을 정하고, 시간표를 고치고, 내가 전할 말씀 내용이 바뀌어서 새로 준비하기 시작했다. 밤이 되고 다들 잠이 들었는데 바까스마요에서 오신 레디라는 자매님이 내가 아직 말씀을 준비하는 걸 보고 뭐 도울 게 없냐고 물으셨다. 여러 가지가 모자라지만 말씀 때 쓸 그림을 도와주셨으면 좋겠다고 말을 꺼내니까 교회 창고에 그림이 많다고 하셨다. 일전에 사모님께서 다른 집회 때 썼던 그림을 찾아보시고는 전부 물을 먹어서 새로 준비해야 한다고 하신 적이 있기 때문에 나는 믿지 않았다. 하지만 자매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잠깐 올라가보자 싶어서 올라갔는데, 발굴 작업을 하듯 자매님은 굉장히 많은 그림을 찾아내셨다. 내 생각 한 번 버린 것이 정말 큰 선물이 되었다. 하나님이 주신 그림이었다.


집회가 시작된 월요일, 동화 속에 들어온 것 같다고 생각했다. 벽면 한쪽을 매우는 커다란 그림, 천장과 다른 벽들에 장식된 풍선과 리본들, 귀여운 옷을 입고 인형과 대화를 하면서 진행을 하시는 자매님.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집회를 하고 싶다고 말을 꺼냈을 당시 나는 내가 찬송하고, 내가 말씀하고, 전부 내가 한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사람의 도움이 없이는 불가능한 행사였다. 생각이 없었던 내가 또 부끄럽기도 하고, 멋모르고 꺼낸 말인데도 나와 상관없이 일하시는 하나님이 정말 감사했다.


 


 어린이 집회가 처음인 나는 보통 그렇게 하는 줄로 알았는데, 그날 밤 이번 집회가 아주 성공적이라면서 사모님께서 여러 가지를 더 말씀해주셨다. 전단지를 하루밖에 돌리지 않았는데 한 달을 두고 준비했던 다른 집회 때보다 훨씬 많은 아이들이 왔던 것과, 아이들에게 줄 과자가 부족했지만 하나님이 물질을 주셔서 더 좋은 것들로 충분하게 준비할 수 있었던 것, 놀이가 끝나면 줄 상품이 없었는데 한 자매가 옷과 양말들을 보내온 것, 오늘 진행을 맡은 자매님이 한 달간 교회를 떠나있었는데 마음을 바꾸고 일했던 것 등 전부 너무나 놀라웠다. 특히 나는 내 스페인어가 너무 모자라서 집회가 끝났을 때 아무도 내 말씀을 알아듣지 못했다고 여겼는데, 아이들뿐만 아니라 그 어머니들까지 이해를 했다고 사모님이 말씀하실 땐 정말 성령이 살아 역사하신 다는 걸 믿을 수밖에 없었다. 사모님은 시간이 촉박했던 만큼 하나님이 하신 일을 더 분명하게 볼 수 있다고 기뻐하셨다.


  



 
마지막 셋째 날까지 많은 아이들이 와 주었고, 또 어머니들과 함께 구원을 받았다. 한국에서 워크샵 기간 동안 믿음이 있어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일하면서 믿음을 배운다는 말씀을 들은 적이 있는데 정말 그랬다. 내가 아무것도 가진 게 없었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넘치도록 채우신 하나님의 능력을 발견하며 기뻐할 수 있다는 게 정말 감사하다. 예전엔 망설이는 마음이 있었지만 지금은 또다른 도전으로 믿음을 배워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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