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체육관집회 첫째날 저녁 말씀
강릉체육관집회 첫째날 저녁 말씀
  • 김두연
  • 승인 2000.10.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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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옥수 목사님 강릉체육관 대전도 집회 월요일 저녁

말씀 : 요한복음 8:1∼11

두 종류의 회개
한 사람은 감방 한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눈물을 흘리며 자기가 어려서부터 삐뚤어져 부모님의 말씀도 안듣고 멋대로 살아온 결과가 교도소인 것을 생각하며 내가 참 악한 인간이구나하고 돌이켰고
또 한 사람은 맞은편 감방에 있으면서 아! 내가 그때 참 잘못했구나 지문을 남기지 말았어야 하는 건데 하며 다음부터는 조심해야지하며 돌이켰다.

누구의 회개가 진정한 회개인가?
어떤 이들은 내가 낙태를 했다. 간음을 했다. 도둑질을 했다고 회개하는데 그것은 근본을 무시한 회개이다.
내가 왜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돌이킴이 진정한 회개이다.

목사님이 군에 가시기 전에 전도사시절로 장팔리에 있었을 때 어떤 어린아이가 있었는데 아버지가 잠든 사이에 지갑을 뒤져 몰래 돈을 훔쳤다.
나중에 알아보니 그 아이는 다른 아이들에게 왕따(?)를 당하고 있었고 큰 아이들이 돈을 가져오라고 시켜서 결국 마음이 눌리게 되어 도둑질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성경에서는 간음을 하면 돌에 맞아 죽는데 간음을 한다고 해서 다 돌에 맞아 죽는 것은 아니다.
처녀가 간음을 하면 돌에 맞아 죽지 않는다. 간음한 남자가 그 여자와 살든지 같이 살기 싫으면 돈을 물면 되었다.
결혼한 여자가 들판에서 아무도 없는데 간음을 하면 돌에 맞지 않았다. 그러나 시내에서 간음을 하면 둘 다 죽인다.
약혼한 여자가 간음을 할 경우도 결혼한 여자와 동일하다.
요한복음 8장의 간음 중에 잡힌 여자는 처녀이었을까? 결혼한 여자 이었을까?
결혼한 여자였다.

그러면 왜 이 여자가 간음을 하게 되었는가?
그 이유는 이 여자가 남편을 떠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간음을 하게된 것이다.
남편이 옆에 있었다면 어떻게 간음을 할 수 있었겠는가!
참 감사한 것은 이여자가 예수님 앞에 오니까 죽음도 그 무엇도 이 여자를 어떻게 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목사님 집회에 참석한 어떤 여인이 계속 울고 있어서 왜 그렇게 우느냐고 묻자 요즘 자살하고 싶다고 했다. 죄를 짓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는 안되는 줄 알면서도...
자기 아들이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는데 너무 두렵다고 했다.
아주머니 혹시 아주머니께서 그 죄를 즐기는 것이 아닙니까?하고 물으셨는데
아니에요 아니에요 정말 진절머리가 나요하고 대답하셔서
정말 아주머니가 그 죄에서 벗어나기 원하신다면 예수님이 도우실 겁니다라고 하셨다.

남편과 같이 있다면 어찌 간음을 할 수 있겠는가!
남편과 떨어져 있기 때문에 간음 중에 잡힌 여인이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던 것처럼 신앙이 그러하다.
교회를 다니지만 왜 죄 속에 빠지는가?
예수 그리스도가 마음에 없기 때문이다.

한밭교회의 자매님 남편이 교도관이었는데 술을 너무 좋아했다. 하루는 술에 취해 파출소를 찾아가 행패를 부리고 대충 변상해주고 마무리를 지었다.
앞으로는 절대 안그럴께, 나는 한다면 하는 사람이야하고 큰 소리를 쳤는데 10일쯤 후에 대전 서부 경찰서에 찾아가서 또 행패를 부렸다.
자매님의 권유로 대전 한밭교회에 찾아와 구원을 받으셨는데 교회에 한 번 나와 줄때마다 대단한 일을 해준것처럼 하면서 집에 갈때는 술을 사가지고 가서 마시곤 하셨다.
그 해 겨울에 12월 31일을 맞이하여 처남과 망년회를 하면서 술을 먹다가 11:40분이 되어 야 이제 올해도 20분 밖에 안남았구나 20분이 지나면 새해다 하다가 갑자기 내가 한밭교회에 나가서 구원을 받았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 맑은 정신이 들며 술병을 정리하고 새해를 맞이했는데 그 후로는 술을 끊었다.
예수님께서 그분을 변하도록 이끄셨던 것이다.
예수님이 함께 하시는데 변치 않을 사람이 누가 있는가!
남편과 떨어져 있기 때문에 간음을 하는 것이다.

내가 스스로 잘 하려고 하니까 잘 안된다는 것이다.

대전 한밭교회 옆에 갈보리 교회가 있는데 아침마다 하도 울어서 어느 날 새벽에 그 동네 동민이 한 사람이 후레쉬를 가지고 찾아와 울고 있는 전도사님 얼굴에 비추면서 잠좀 자자 잠좀 자라고 했다.
왜 사람들이 교회가 옆에 세워지면 싫어하는가?
사람들이 우는 것은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간음한 여자는 무엇인가에게 잡혀 있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에게 잡혀 있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음란한 생각이 이 여인을 잡고서 끌고 다니는 것이다.
그 당시에 간음을 하다가 잡히면 돌에 맞아 죽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두려움이 있으면서도 음란한 생각이, 간음이란 죄가 끄니까 끄는대로 끌려다닌 것이다.
사도 바울은 내가 원하는 바 이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그것을 행하니 내가 아니요 내 속의 죄니라고 로마서에서 말씀했다.
부끄럽고 괴롭지만 이길 힘이 없기 때문에 끌려가는 것이다.

대구교도소의 사형수였던 남일환씨에게 목사님께서 복음을 전하셨었는데 우연히 대구교도소 교목으로 계시던 목사님을 만나게되어 사형장에서 있었던 일을 들으셨다.
사형집행장에서 검사가 남일환씨에게 할 말이 있느냐고 하자 얼굴을 가린 것을 벗겨달라고 하고 당신들은 내가 제명에 죽지 못하고 일찍 죽는다고 불쌍히 보고 있지만 나는 당신들이 불쌍하다. 대한민국 법으로는 내 죄를 못씻지만 하늘나라 법으로는 내 죄가 다 씻어졌다.
이 땅에서는 내가 죄인이지만 하늘나라 법으로는 내가 의롭게 되었다......
하면서 나의 갈 길 다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찬송을 부르면서 사형을 당했다고 했다
그 모든 죄를 씻음받았는데 그 얼마나 큰 기쁨인가!

성경에는 죄인이 어떻게 그 죄를 사함받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기록되어있다.
간음한 여자가 모세의 법에는 돌로 치라 했는데 예수님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라고 말씀하셨다.
그 간음한 여자는 예수님을 통해 분명히 죄를 사함받았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이러한 확신이 없는데 문제는 이러한 죄사함에 대하여 분명하게 알지 못하고 대충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알기는 알지만 마음의 죄는 씻어지지 않는 것이다.

간음한 여자가 이제 돌아가면서 무슨 마음을 가졌겠는가?
돌에 맞아 죽을 수 밖에 없는 추한 나같은 인간이 예수님을 만나 죽음에서 벗어났구나 너무나 감사하다는 마음을 가졌던 것이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간음으로 가득찬 마음, 두려운 마음뿐이었는데 예수님을 만난 후에는 깨끗한 마음, 감사한 마음으로 가득찾던 것이다.

사람들이 뼈를 찍는 사진도 만들고 단층촬영 사진기도 만드는데 마음을 찍는 사진은 못만들고 있다. 마음을 찍는 사진기가 있다면 교회에 처음 나오신 분을 세워놓고 어디 한 번 서보세요 찰칵.. 어휴∼ 점잖게 생기신 분이 마음이 왜 이리 지저분합니까!
죄사함 받으세요. 하고 복음을 전해......
지난 주간 노인 두 분이 세상을 떠나셨다.
마음의 세계에 대해서 인간들은 너무 모른다.
이 성경만이 우리 인간의 마음을 보여준다.

강도가 어떤 돈이 없는 사람에게 권총을 들이대면서 1,000원만 내놔하면 죽어도 1,000원을 낼 수 없다.
간음하는 마음이 없고 도둑질할 마음이 없으면 어떠한 형편 속에서도 죄가 나오지 않는다.
예수님이 그러하셨다.
그러나 우리 속에는 온갖 더러운 것이 가득하다.
일요일날 교회갈 때는 지저분한 마음, 더러운 마음, 음란한 마음은 밑에다가 숨기고 위에는 겸손한 마음, 부드러운 마음, 양순한 마음으로 바꾸어 가지고 가는 것이다.
그러다가 기회가 주어지면 언제든지 뒤섞여 튀어나오는 것이다.
마치 집안에 창고에 ?치, 드라이버, 망치 등이 있다가 필요하면 사용하고 집어넣듯이..

간음한 여인을 끌고 다닌 것이 바로 죄이다.
이 여인은 죄의 종으로 살아왔던 것이다.
간음을 안하려고 죄 짓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치는데 내 힘으로는 안되는 것이다.
그 근본이 해결되지 않은체 집사가 되고 장로가 되고 목사가 되어 위치를 지키려고 하다보니까 위선된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간음을 안하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그것이 자연스럽게 싫어지는 것이다.
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마음에 오셔서 계시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정글에 살던 토인 아이들이 표범새끼를 기르다가 그 표범이 자라서 아이들을 잡아먹은 것처럼 우리 속에 있는 근본이 바로 이 표범과 같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나니.... 요한복음 8:44
우리의 근본 성품이 이러하다.
교육과 도덕으로 어느 정도 눌러놓을 수는 있지만 어느 정도가 지나면 죄를 짓고 악하게 되어진다.
왜 착하다고 하던 아이들이, 목사님 아들들이 잘 자라다가 죄를 짓고 교도소에 가고 하는가!
우리 인간은 한 사람도 선하게 살 수 없다. 위선적으로 살 수는 있어도.

장티푸스를 고쳐야 열이 내리고 감기를 고쳐야 기침이 멎듯이 죄의 증상이 없어지려면 마음 속의 죄를 해결해야 한다.

죄를 사함받고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이 게시물은 인터넷선교님에 의해 2007-06-12 21:08:36 게시판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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