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동유럽 구석구석 복음의 역사가...
[유럽] 동유럽 구석구석 복음의 역사가...
  • 최세호
  • 승인 2012.07.18 17: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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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유럽 구석구석 복음의 역사가...

독일 만하임 월드캠프가 끝나고, 유럽에 있는 GNC단원들은 유럽전역으로 무전전도여행을 다녀왔다.
지난주에 동유럽 국가들의 단기들이 2주의 전도여행을 마치고 돌아왔다.
그 중, 불가리아팀을 소개한다.


불가리아

500여년 동안 터키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다가 1878년에 독립을 한 이후, 불가리아에는 많은 터키 사람들이 마을을 이루고 지금까지 살고 있다. 한 때는 지배층이었던 이 들이 지금은 집시들과 함께 불가리아 사람들에게 무시를 받는 소외계층이 되어 가난하게 살고 있다. 이번 무전전도여행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이 터키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다.



전도여행 첫 날 아침 우리는 소피아에서 200킬로정도 떨어진 플로브디브로 목적지를 정하고 히치하이킹을 시작했다. 터키 김근수 목사, 불가리아 최세호 전도사 와 단기 선교사 4명 까지 모두 6명의 대식구는 우리를 위해 준비된(?) 승합차로 플로브디브까지 무사히 도착했다.





먼저 그 도시에 있는 교회를 찾아갔는데 김 목사님이 터키 선교사인 것을 들은 목사가 우리를 터키인 목사에게 안내해 주었다. 이렇게 해서 우리가 생각지도 못했던 터키 사람들과의 만남이 시작되었다. 터키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 중에는 가장 큰 규모인 플로브디브에는 3명의 목사가 서로 도와가며 목회를 하고 있었다. 저녁시간 불가리아교회 목사가 제공해 준 숙소에 그 목사들이 찾아와 교제를 하게 됐다. 창세기를 통해 성경이 말하는 죄에 대해서 말씀이 전해졌다. 말씀을 들으면서, 그리고 우리가 믿음으로 무전전도여행을 하고 있다는 것을 들으면서, 목사들은 우리를 향해 마음을 활짝 열었다. 그 중 한 목사는 ‘너희가 무전전도여행 중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너희를 만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라고 했다.







다음 날부터 세 명의 목사가 우리의 스케줄을 책임졌다. 낮에는 우리를 데리고 심방을 다니고, 저녁에는 자기들 모임에 말씀을 전하도록 해주었다. 우리는 만나는 사람마다 복음을 계속 전했는데 예수님이 우리모든 죄를 사했다는 말씀과 그래도 우리는 죄인이라는 형편 사이에서 혼돈하고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분명한 복음 앞에 너무 기뻐하고 감사해 했다. 그 중 한 청년은 구원을 확신하고 찾아와 ‘20년 동안 교회를 다녔지만 죄에 문제에 대해서 항상 애매했는데, 말씀을 들으면서 이제 죄에서 벗어나 자유하다’고 간증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목사들은 불가리아 안에 많은 터키인 마을이 있고, 그 곳에 다 교회가 있는데, 남은 기간 다른 곳보다, 터키인 교회에 찾아가 말씀을 전해달라, 그 교회들에도 이런 말씀이 필요하고, 그들도 이 말씀을 들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20 킬로 떨어진 아세노브그라드 행 버스티켓을 사주어서 우리는 나흘동안 말씀을 전했던 플로브디브를 떠나 다음 마을로 이동하게 되었다.







플로브디프에 있는 동안 너무 감사했다. 우리에게 집도 주시고 굶기지 않고 항상 풍족하게 음식을 주시고, 그 사람들은 가난해서 일을 할 수밖에 없다. 목사님들도 전부 일을 하고 계신다. 이런 사람들인데 직장에 휴가를 내고 관광시켜주고 우리는 해준 것도 없는데 우리에게 너무 잘해주었다. 우리는 아카펠라도 망하고 댄스도 틀리고 잘한 것도 없고 항상 먹기만 했는데, 그 사람들이 말씀을 듣고 우리에게 마음을 열고 베풀어 주고 구원을 받고 하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감사했다. (터키 - 정아영)





그리고 플로브디브에서, 방학이지만 딱히 할게 없어서 거리를 배회하는 많은 아이들을 보았는데 이 아이들은 배움의 기회가 적을 뿐 아니라, 불가리아 사회에서 터키인의 자리가 없어 어른이 되어도 소망이 없다고 했다. 이 아이들의 마음에 예수님의 마음이 심긴다면, 미래가 달라지겠다는 마음이 들어, 어린이 캠프를 하자고 제안했다. 목사들은 자기들의 가난한 형편을 넘어서 마음으로 받아들였고 8월 말이나 9월 초에는 이 도시에서 어린이 캠프를 하기로 했다. 이렇게 우리는 이들과의 또 다른 만남을 기약했다.



또 다른 하나님의 인도를 기대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올라 탄 아세노브그라드행 버스 안에서 만난 터키계 청년이 우리를 터키마을로 인도해 주었다. 마을에 도착했을 때, 교회를 찾는 우리를 사람들은 어느 집으로 데려다 주었다. 그 집은 그 마을 교회 장로의 집이었다. 80이 넘으신 할아버지와 4대가 함께 모여 살고 있었다. 이 장로님과 우리의 여행에 대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복음을 전했고 장로님이 구원을 받으셨다. 이 분은 공산주의 시절 이 동네에서 처음으로 하나님을 믿기 시작하였고 예배당도 짓고 많은 봉사를 했지만 죄에서 벗어나지 못했었는데 이 날 분명하게 구원을 받고 너무 기뻐하면서 가족들에게 ‘이젠 내 죄가 없다. 나는 거룩하게 되었다’고 외치는 모습은 너무나도 감동적이었다.



저녁 예배에서도 우리는 모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고 예배 후 교제 중에 장로님의 손자인 목사도 구원을 받았다. 구원을 받고 그는 평소에 줄을 치며 보던 말씀인데도 전혀 다르게 읽혀진다고 말했다. 그리고 조금씩이나마 말씀의 맛을 보고 안다고 생각했었는데, 사실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인정했다.



다음 날 저녁에는 가족예배를 드리자고 제안을 했고 가족모두 흔쾌히 승낙했다. 장로님 가족들이 모두 모인 가운데 복음을 전했는데, 며느리와 딸도 구원을 받고 단기선교사들과 같이 춤을 추고 찬송을 부르면서 기뻐했다. 가족예배를 할아버지의 기도로 마쳤는데, 죄에서 구원해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구원의 기쁨을 표현하는 그 기도는 너무나 아름다웠다. 이 집에서 더 머물기가 여의치 않아 우리는 다음도시 치르판으로 가기로 하고 집을 나섰는데 장로님 부인되는 할머니가 터미널까지 우리를 배웅하고 버스를 탈 수 있게 해주셨다.



무전전도 여행 기간 동안 답답했던 건 잠자리도 먹을 것도 아닌(사실 너무 넘치도록 주셨다) “언어” 였다. 내가 한국어를 아무리 잘하든 세계 공용어라 불리는 영어를 하든 많은 나라가 쓰고 많은 이가 배우는 불어를 조금 한들 불가리아 터키계 마을 사람들에겐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들 중 나와 소통할 수 있는 언어를 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목사님 말씀도 알아먹을 수 없고 사람들이 몰리며 무얼 물어봐도 답할 수 없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시간이 지나자 우리는 소통할 수 있었다. 온갖 행동으로 표정으로 마음으로 우리는 소통했다. 아이들은 진심으로 우릴 좋아해주었고 아주머니나 마을 사람들도 우릴 귀한 손님으로 마음 깊이 사랑해주었다. 볼에 입맞춤을 통해서 마주잡고 집까지 걸어가는 꽉 쥔 손 속에서 웃음 속에서 진짜로 행복해했다.
(프랑스 - 김도연)


작은 시골 도시인 치르판에 도착했는데 이곳의 터키 교회에서도 우리를 따뜻하게 맞아주었고 그 날 저녁예배에 말씀을 전할 수 있게 해 주었다. 15평 남짓한 예배당에 60여명이 모였는데, 36도를 웃도는 더위에 두 개의 선풍기 만이 그 열기를 식히고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땀을 흘려가며 말씀을 들었고 예배를 마친 후 연보로 비닐봉지에 담긴 동전뭉치를 우리에게 건넸는데, 공장도 없고 일자리도 많지 않아서 12시간 밭에 나가 품을 팔면 겨우 5000원을 받는 이 곳 형편을 생각할 때, 그들의 마음이 느껴져 감사했다.







오로지 말씀 하나로 이번 무전전도여행이 이루어졌다. 나는 그것을 확실히 깨달았다. 하나님께서 소유욕이 강한 까마귀가 자기고기를 엘리야에게 가져다 주게 하신 것처럼 하나님 말씀 하나로 모든 것이 이루어졌다. 우리에게 음식이나 잠자리를 내 줄 형편이 전혀 아닌데, 그 말씀 하나로 우리에게 있는 것 없는 것, 온갖 것을 다 내주었다.
(프랑스 - 백지영)




그 다음날 아침 치르판 교회 목사의 연락을 받고, 스타르자고라의 한 교회에서 9인승 승합차를 가지고 우리를 데리러 왔다. 스타르자고라에 도착하자 목사가 우리를 데리고 중국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대접했다. 이 교회는 이미 많은 선교사들이 왔다 갔고, 며칠 후에도 캐나다에서 선교사들이 온다고 했다. 식사를 하면서 여러 선교사들로부터 후원 받은 이야기를 하는데 이 분이 우리를 대하는 목적이 느껴져 받는 대접들이 부담스러웠다. 식사 후 교제 중에 교회가 어려움이 있을 때, 믿음으로 넘어가야지 후원을 의지하면 안 된다고 그러면 교회가 죽는다고 이야기 하자, 우리에게 뭔가를 기대했는데 뜻밖의 이야기를 들어서 그런지 목사의 얼굴이 시무룩해 졌다. 식사 후 교회로 돌아와 커피를 마시다 자연스럽게 한 시간 남짓 성경을 가지고 교제가 되었다. 교제가 끝난 후 목사가 좀 전과는 완전 다른 태도로 마음을 열면서 ‘지금 까지 나는 여러 선교사들을 만나봤고 말씀을 들었지만, 말씀이 좋다고 생각한적이 없었는데 당신이 전해준 말씀은 그들과 다르다’고 하면서 기뻐했다. 말씀 앞에 마음을 바꾸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도 감사했고 저녁 모임 때는 그분의 불가리아어 통역으로 그 교회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다.



다음날 아침 다른 교회에서 한 젊은 청년이 어제 말씀을 뒷부분만 들었다며 마저 듣고 싶다고 찾아왔다. 이 청년이 복음을 듣고 구원을 확신하며 기뻐했는데 마침 목사가 들어왔길래, 이 교회에는 특별히 젊은 청년들이 많은데 이 들에게 말씀을 가르치면 좋겠다고 하자 목사가 기쁘게 허락하면서 청년뿐만 아니라 주변의 목회자들에게도 말씀을 전해 달라고, 소피아든 앙카라든 인도자들을 모아서 보낼 테니 성경을 가르쳐 달라고 하였다. 이 목사가 30킬로 정도 떨어진 노바자고라 라는 마을에도 말씀을 전해줄 것을 우리에게 부탁했고 그 곳 목사가 우리를 데리러 와서 우리는 같이 다음 도시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원래 우리가 노바자고라에 도착했던 날에는 모임이 없었다. 그러나 우리의 말씀을 듣기 위하여 여러 교회 사람들이 같이 모였다. 이 들은 다른 외국 선교회에서 지원을 받고 있는 실정이라 우리를 자기 교회에 초청하는데 주저했다. 우리가 머물 수 있도록 마련해 준 집은 주인이 외국에 나가 있어 비어있는 단독주택이었는데 제법 너른 마당이 있어서 그 마당에서 모임을 가지기로 결정했다. 한 교회 목사가 모임 시작할 때 우리 죄를 씻고 거룩하게 해달라며 얼마나 간절히 기도하는지 우리의 마음도 이들을 구원하시기 원하는 하나님의 마음으로 뜨거워졌다. 80여명 사람들이 의자에 바닥에 심지어 담장 밖에 서서 말씀을 들었다. 이 들에게 복음을 전했는데, 말씀이 끝나자 목사들 중 한 분은 ‘나는 이제 이 말씀만 전하면서 살겠다’고 하는데 우리마음도 기쁨으로 가득 찼다. 말씀을 들은 사람들이 다가와서 이렇게 분명한 말씀을 전해주어 너무 감사하다고, 다음에 다시 와서 또 말씀을 전해달라 부탁했다.






다른 팀들의 무전전도여행의 과정과 시간들을 들었을 때 저의 마음에는 이것이 “무전전도여행인가?” 라는 생각뿐이었고, 우리 팀 역시 “뭐~무전여행” 또는 “구걸여행” 밖에 되지 않겠구나 라는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저의 마음을 하나님께서는 무척 부끄럽게 만드셨습니다.
(프랑스 - 박병주)





이 번 무전 전도여행 기간 동안 말씀이 나타나 일하시는 것을 보았다. 말씀이 일하실 때 우리의 모습이 전혀 문제되지 않았고 우리는 너무 기쁘고 행복하게 쉴 수 있었다. 이 전도여행을 이끄신 주님 앞에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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