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받은 모압 땅에서 베들레헴으로 옮겨 온 후
저주받은 모압 땅에서 베들레헴으로 옮겨 온 후
  • 화상훈
  • 승인 2013.12.16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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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의 간증

 

굿소리를 들으며 자랐지만 하나님을 믿었던 소년
내 고향은 경남 하동이다. 할머니가 대무당이었고 어머니 또한 무속인의 길을 걸었기에 나는 항상 굿소리를 들으면서 자랐다. 집안에 우환이 생길 때마다 굿을 해서 조상을 달래야 하는 우리 집에서 빨리 탈출하고 싶었다. 늘 자손을 괴롭히는 조상신은 진리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진리는 무엇인지, 이 세상에서 가장 합당한 신이 누구인지 궁금했다.
나는 선장이 되기 위해 부산해양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기독교 학교라 하나님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고, 그 후 고향의 어느 전도사님과 자취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을 좀 더 깊이 알게 되었다. 집안의 핍박이 심하고 죄 때문에 너무 힘들었지만 하나님은 분명히 계신 분이기에 교회에 열심히 나갔다. 열심히 회개기도를 하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배웠기에 매일 지은 죄를 고백하며 용서를 빌었다.
교회를 다니는 많은 남녀 학생들이 연애하던 그 시절, 나도 교회에서 만나 오빠 동생으로 지내던 아내와 일찍 동거를 시작했고, 스물하나에 첫 아들을 낳았다. 그리고 아이가 백일이 지났을 때 아내와 아이를 처가에 맡겨두고 군에 입대했다.
 
우연히 <두 부류의 신앙>을 읽으면서
 
1989년 겨울, 군산비행장 옆에 있는 해안에서 야간 경계근무를 서는 일로 육군 신병생활이 시작되었다. 구타가 많던 시절이라 하루하루를 힘들게 보내고 있던 어느 날, 어느 방위병이 취사장에 놓고 간 <두 부류의 신앙>을 우연히 보고 읽게 되었다. 그리고 다음날부터 그 방위병에게서 복음을 들었다. 하지만 그때까지 내가 해왔던 신앙생활과 전혀 다른 복음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한국의 많은 교인들이 지옥에 간단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후, 로마서 8장 3절 말씀이 마음에 들어왔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롬 8:3)
‘예수님이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구나! 바로 내 육신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구나!’ 가슴이 뻥 뚫린 기분이 들고, 날개가 있으면 날아갈 것 같았다. 그때까지 숱하게 들었던, 예수님이 나를 위해 죽으셔서 죄를 사했다는 이야기가 내 마음에 이루어졌다. 그리고 다음날 방위병 형제님이 구체적으로 전해준 죄 사함에 대해 들으면서 구원이 분명하게 마음에 자리 잡았다.
그 후, 하나님께서 부대에서 많은 핍박을 받으면서도 복음을 전할 수 있게 힘을 주셨다. 대대장님이 제재를 가했지만 장문의 편지를 드려서 오히려 군산중앙침례교회(현 기쁜소식군산교회)의 주일예배에 계속 참석할 수 있었다. 제대할 때까지 복음을 전해서 여러 부대원이 구원을 받았고, 함께 성경공부를 하면서 군생활을 행복하게 할 수 있었다.

모압 땅, 세상 길로
1992년 3월, 제대한 후 부산에 있던 아내와 아들을 군산으로 데리고 와서 함께 살았다. 주님의 은혜로 기아특수강에 입사했다. 복음을 전하라고 많은 사람이 일하는 대기업에 주님이 들어가게 하셨지만, 나는 승승장구하여 노조 사무국장까지 하면서 마음을 높였다. 군대에서 하나님이 역사하신 일들을 다 내가 뛰어나서 된 일들로 만들었다. 점점 전도사님이 판단되고, 말씀이 들리지 않았다.

 
결국 나는 교회를 떠났다. 몇 달 있다가 돌아오려고 생각했지만 내가 발을 들여놓은 모압 땅, 세상 길은 그렇게 돌아올 수 있는 길이 아니었다. 교회를 떠나면서 회사에서도 어려움을 겪었다. 선후배의 배신과 음모로 입사 5년 만에 사표를 쓰고 나와야 했다.
1997년, 고향인 진주로 내려왔다. 이것저것 조그마한 사업들을 했지만 다 망했다. 그래도 ‘남보다 한 발 더 뛰고, 덜 자고 하면 잘될 수 있어!’ 하고 나 자신을 믿었다. 친구인 김봉철 목사님이 전화도 하고, 명절 때마다 우리 집으로 찾아와서 교회로 돌아오라고 권고했지만 들리지 않았다. 처자식을 먹여살리려고 체면 따위는 버리고 노점상을 하면서도 하나님께 돌이킬 생각은 없었다. 허전한 마음을 술로 달래며 살았다.
돈을 조금씩 벌어 영업용 용달차 한 대를 사서 1999년부터는 이삿짐센터를 시작했다. 일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으면 늘 술로 풀었다. 아니, 마음에 평안을 잃은 나를 술이 끌고 다녔다.

몸도, 정신도 망가져 갔다
2012년 5월 1일 오후 4시경, 하늘이 빙빙 돌고 물체가 흐릿하게 보이더니 쓰러졌고, 숨쉬기가 어려웠다. ‘사람이 이렇게 죽는구나’ 하고 덜컥 겁이 났다. 아내가 나를 급히 경상대학교 병원 응급실로 옮겨 검사를 받았지만 이상이 없다고 했다. 다시 며칠 동안 심장 쪽을 다 검사했지만 역시 이상이 없다 했다. 병이 없으니 입원이 안 되었다. 담당 교수님에게 ‘하루종일 머리가 멍하고, 팔다리에 힘이 없고, 얼굴은 창백하고, 응급실에 두세 번을 실려왔는데, 왜 병을 못 찾아내냐?’고 따졌다. 교수님은 ‘다른 사람은 병이 분명해서 걱정인데, 선생님은 과학적으로 이상이 없는데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며, 그렇다면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자리를 박차고 나와 유명하다는 한의원을 몇 군데 찾아가서 진찰을 받았다. 가슴에 스트레스가 쌓여 화 기운이 아래로 내려가지 않아서 그렇다며 한약을 조제해 주었는데, 먹어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다슬기 엑기스, 홍삼, 천마, 꿀, 이것저것 먹어도 차도는 없고 증세만 악화되어 갔다.
2012년 7월 1일부터는 정신이상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삿짐 고객의 전화를 받으면 손이 덜덜 떨리고 머리가 삐쭉삐쭉 서는 두려움이 찾아와서 전화도 거의 받지 못하고 누워 있기만 했다. 그런 날들이 계속되어 일은 물론 정상적인 생활도 할 수 없었다.
아내는 운수업을 하는 나를 위해 9년째 방에 부처 상을 두고 저녁에는 불경을 외우고 아침에는 향을 피웠다. 전에 나와 함께 교회를 다녔지만 구원받지 않았던 것이다. 아내는 ‘고향의 형님이 블루베리를 심는다고 포크레인으로 선산을 파헤쳐서 당신이 아프다’며 굿을 해야 낫는다고 했다.

 
마지막 순간, 죽음 앞에서 기도했다
7월 12일 낮, 멍하니 창 밖 파란 하늘을 보면서 처음으로 죽음을 생각하며 하나님을 불렀다.
‘이 하늘, 만물,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20년 전 나를 죄에서 구원하신 하나님! 이제 내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죽을 때 죽더라도 마귀에게 내 몸을 내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날 밤 아내는 닷새 동안, 돌아가신 할머니와 어머니가 꿈에 자주 나타나 죽은 사람을 장사하는 악몽을 꾼다며, 자신도 너무 힘드니 굿을 하자고 심하게 몰아세웠다. 우리는 몹시 다투었고, 나는 정신을 거의 잃었다. 고열이 나면서 온몸이 쥐가 나듯 굳어져 ‘이제 죽는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차라리 죽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죄에서 구원하신 예수님을 마음으로 찾았다. 마지막 순간 죽음 앞에서 기도했다. 그러자 굳어진 몸이 발끝에서부터 서서히 풀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7월 13일 아침, 인터넷을 검색해 기쁜소식진주교회의 연락처를 알아내 전화했다. 한 형제님이 찾아왔고, 이후 형제님들이 움직이지 못하는 나를 차로 교회에 데려가 주어 말씀을 들을 수 있었다. 목사님의 안수기도도 받았다. 그렇게 1주일을 보내니 몸이 많이 회복되었다. 그리고 다가온 여름수양회에 다녀오면서 일을 할 수 있을 만큼 몸이 좋아졌다.

다윗의 행복을 느꼈다
아내는 한 집에 두 종교가 있을 수 없다며, 아이들도 다 컸으니 당장 이혼하자고 했다. 주님을 찾는 것 외에는 길이 없었다. 목사님과 형제 자매들도 우리 가정을 위해 기도했다. 얼마 후, 아내는 마음을 바꾸어 집에 있던 불상을 다 절에 가져다주었다. ‘자신도 군산에서 들은 복음을 기억하고 있다’면서, 그동안 가족의 무사 안녕을 위해 그렇게 살았다며 스스로 갈 때까지는 교회에 다니자고 강요하지 말라고 했다. 하나님께 감사했다. 무너지고 망가진 것들을 하나님이 하나하나 회복시켜 가셨다. 지난 날들을 돌아보면서, 내가 교회를 떠난 것이 두 아들이 구원받는 길을 막고 아내를 잘못되게 만든 저주의 길이었음을 알았다.
하나님은 나를 교회로 인도한 후 1년 동안 말씀만 사모하게 하셨다. 여러 집회에 참석해서 말씀을 듣고, 마하나임 사이버신학교에 입학해서 말씀을 듣고, 전도여행을 떠나 말씀을 들으면서 마음에 점점 힘을 얻었다. 말씀이 하나님이요, 말씀이 실상임을 하나님께서 믿게 해주셨다. 하나님이 교회에 허락하신 이사야 49장 18절 말씀이 나 역시 교회로 돌아오게 했음을, 목사님의 간증을 들으면서 알았다. 그리고 나쁜 나무인 나에게서 나오는 선악을 분별하는 지혜가 얼마나 악하며, 내 의를 세우는 것과 형편을 따라 하는 소리가 거짓임을 하나님께서 믿게 해주셨다.
탕자 이야기는 내 삶을 그린 것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나에게는 아버지의 은혜만이 있었다.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다윗의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내게 관계된 것을 완전케 하실지라.”(시 138:8)라는 말씀을 들으면서, 우리 가족도 다 예수님 안으로 들어올 것이 믿어졌다.
그때부터 하나님이 일하시기 시작했다. 올해 스물다섯 살인 큰아들과 3월에 제대한 작은아들은 하나님을 전혀 알지 못했는데, 집회에 참석하고 이어서 수양회에 참석해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았다. 지금은 교회에 마음을 열고 지내고 있다. 아내 또한 지날 달부터 예배에 참석하고 있다. 저주받은 모압 땅에서 은혜로 사는 베들레헴으로 옮겨 주신 주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렸다.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교회가 있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그런 말씀을 나도 좀 들을 수 있을까요?”
나는 내 가족, 내 사업, 내 삶을 하나하나 주님께 맡기기 시작했다. 이제 내가 할 일은 예수님 안에서 안식하는 것이다. 그리고 내 속에서 만나는 사람들마다 복음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하루는 이사하려는 집이 있어서 견적을 내다가, 식당을 운영하는 50대 중반의 주인 아주머니에게 복음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났다. 나는 그냥 “아주머니, 저는 지금 죽어도 참 행복합니다. 영원히 살 집이 있습니다. 그곳은 천국입니다.” 하고 말했다. 밑도 끝도 없는 나의 말에 아주머니는 “그 천국은 어떻게 갑니까?” 하고 물었다. “믿음으로 가지요. 내가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데, 예수님이 내 죄를 다 짊어지고 가셔서 하나님이 ‘너, 죄 없어. 너, 의인이야’ 하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이기에 그 말씀을 그냥 믿었습니다.” 아주머니는 다시 “나도 어릴 때 교회를 다녀서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어요. 그런 말씀을 나도 좀 들을 수 있을까요?” 하고 물었다.
다음날 나는 아주머니를 교회로 모시고 갔고, 아주머니는 목사님이 전해 주신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았다. 아주머니는 기구한 삶을 사신 분이었다. 사마리아의 목마른 여인처럼, 남편과 이혼한 후 되는 일이 없어서 고통 속에서 지내고 있었다. 그날 아주머니는 구원을 받고 한없이 기뻐하며 행복해했다. 지금은 교회에서 양육을 받으며 지내고 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참 쉬웠다.
하나님은 사촌형님도 구원의 길로 인도하셨다. 형님이 크게 잘못하여 교통사고를 내고 내가 일하는 사무실로 찾아왔다. 내가 형님에게 말했다.
“형님, 제가 도와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제가 병으로 다 죽어가다가 교회에 가서 회복된 것을 형님이 잘 아시는 것처럼, 제가 형님에게 드릴 수 있는 것은 내 마음에 있는 하나님뿐입니다. 하나님은 형님을 사랑하셔서 형님에게 이런 일을 만나게 하셨습니다. 지금 우리 목사님을 만나면 형님의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지금 갈 수 있겠습니까?”
형님은 망설임 없이 가자고 했다. 형님은 성경 한 번 읽지 않은 분으로, 그 전에 복음을 전하려고 할 때마다 “하나님이 어디 있냐? 네 몸이 나았으면 됐다.”고 일축했던 분이었다. 그날 형님은 목사님이 전해 주신 말씀을 들었고, 이후에 집회에도 참석했다. 형님은 자연을 무척 좋아해서 매일 TV에서 자연 다큐멘터리를 보는데, 집회 중에 연어의 회귀본능 영상을 보면서 “지금까지 천지 만물을 만드신 창조주를 몰랐는데, 이제 알게 되었다.”고 했다. 만물이 자연적으로 생겨났다고 여겼던 형님에게는 큰 변화였다. 그리고 얼마 후, “예수님이 내 죄를 다 씻으셨으면 내가 죄가 없다”며 복음을 받아들였다. 지금은 우리 가족과 함께 예배에 참석하고 있다.

 
아버지의 아름다운 것들로 채워 주시는 하나님께
내 허물이 드러날 때마다 이런 나를 온전케 하신 주님의 보혈이 감사하다. 말씀을 믿는 믿음으로 새 생명 가운데 행하게 하시는 주님, 나로 말미암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살게 하시는 주님이 감사하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있다. 내 마음에 태어나신 주님, 나를 다시 교회로 돌아오게 하신 주님을 생각하면 얼마나 감사한지! 작년 크리스마스를 앞두고는 우리 직원 가족들과 같은 업체의 사장님들을 합해서 모두 40명이 그라시아스 합창단의 크리스마스 칸타타 공연을 보며 기쁘고 행복한 시간을 가졌다. 올해도 칸타타가 기다려진다. 어떤 감동과 감사한 일이 있을지, 작년보다 더 큰 기쁨과 행복을 소망하면서 말이다.
교회를 떠나서 보낸 20년은 돼지우리에서 보낸 날들이었다. 결코 기쁘지 않고 행복하지 않았다. 교회로 돌아오니 하나님께서 아버지의 아름다운 것들로 나에게 채워 주신다.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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