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선교사의 아름다운 변화
어느 선교사의 아름다운 변화
  • 박옥수(기쁜소식강남교회 목사)
  • 승인 2014.04.01 1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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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끝까지 복음을, 끝날까지 주님과

“그 선교사님은 너무나 귀한 선교사입니다.”

 
내가 아는 어느 목사님이 있다. 아프리카에서 복음을 위해서 일하고 있는데, 이 목사님은 우리 선교회에 있는 수많은 선교사들 가운데 어느 누구보다도 희생적으로 일한다. 나는 이 목사님이 일하는 선교지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어서, 주위 나라에 있는 어느 목사님에게 그가 선교지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돌아보았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 그 목사님이 그 나라에 가 선교사님을 찾아보고 나서 나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목사님, 저는 그 선교사님에게 갔다 와서 많이 울었습니다. 그 나라는 사는 것이 너무 어렵습니다. 아프리카 여러 나라의 선교사들이 그 선교사님이 사는 집보다는 살림살이를 하나라도 더 가지고 있습니다. 그 선교사님이 우리 선교사들 가운데에서 가장 가난하게 사는 것 같습니다. 그 나라 현지인들보다 더 어렵게 삽니다. 그리고 돈을 다 모아서 학교를 지어 그곳 학생들을 가르치려고 합니다. 많은 학생들이 그 학교에 들어오려고 하고, 학생들이 참 좋습니다. 저는 선교사라고 말할 자격이 없습니다. 그 선교사님은 너무나 귀한 선교사입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는 그 선교사님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그리고 아프리카의 선교사들에게 차를 사주고 싶고, 물질적으로도 지원해 주고 싶은 마음이 일어났다.
자동차 없이 선교하고 있는 선교사들에게 차를 사주려고 마음을 정하고 교회에서 이야기하자 아주 많은 성도들이 마음을 같이했다. 그래서 한 나라 한 나라 자동차를 사주었다. 어떤 나라는 차를 사주어도 10,000달러나 되는 세금을 낼 수 없어서 차를 타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런 문제도 마음을 모아가며 해결해야 했다. 감사하게도, 자동차를 보내는 일에 많은 형제 자매들이 함께해서 지금까지 10여 개의 나라에 차를 보냈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보내려고 한다. 다른 형편은 어려워도 복음을 전하는 것은 차를 타고 다니면서 자유롭게 하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이 일을 하고 있다.

“선교사라고 하든지 목사라고 해야지, 형제가 뭡니까?”
앞에 말한 선교사님은 무척 좋은 선교사인데도 주위 나라의 선교사들과 자주 부딪혔다. 그래서 한번은 내가 “사랑하는 형제에게” 하고 편지를 썼다. 그런데 선교사님이 화가 난 표현으로 답장을 보내왔다.
“목사님, 선교사라고 하면 안 됩니까? 선교사라고 하든지 목사라고 하든지 해야지, 형제가 뭡니까?”
나는 우리 선교회의 사역자들을 친밀하게 부를 때 형제라고 부른다. 김성훈 형제, 이헌목 형제, 김동성 형제…, 이렇게 부르면 더 가까워지는 것 같고 부르기도 좋다.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그 선교사님에게도 그렇게 한 건데, 선교사님이 그것을 가지고 따지며 대들었다. 나는 ‘자네는 툭하면 나를 들이받는가?’ 하며, “나는 편하게 부른 건데 그렇게 마음이 상했는가? 그걸 가지고 화를 내고 그러는가? 미안하네. 앞으로는 그렇게 안 부르겠네” 하고 넘어갔다.
그 선교사님은 진심으로 일하지만 자기가 잘하고 있고 옳다고 생각했기에 다른 선교사들과 자주 부딪혔다. 그로 인해 힘들고 고통스럽게 지내는 것이 너무 안타까웠다.

‘내가 멋대로 살았는데 교회는 나를 위하고 섬겨 주는구나!’
얼마 전, 서부 아프리카에서 몇몇 선교사들이 일이 있어서 한국에 들어왔는데, 그때 함께 교제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 선교사님도 어머니가 몸이 아프셔서 들어왔다. 선교사님은 어머니 곁에서 일주일을 지내고 교회로 왔다. 그런데 우리가 깜짝 놀란 것이, 옛날처럼 거친 모습이 아니라 양처럼 순하고 귀하게 변해 있었다. 선교사님은 자신이 변하게 된 이야기를 했다.
“집에 가니까 어머니께서 몸이 많이 아파서 불편한 가운데 계셨습니다. 어머니 다리뼈가 부러졌는데, 부러진 부분이 톱날처럼 날카로워 그 뼈가 살을 찔러서 너무나 고통스러워하셨습니다. 수술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안 돼 수술도 못 하고 너무 어렵게 지내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가슴이 저미도록 아팠습니다. 그리고 고향에 가서 누님을 만났는데, 누님이 정신이 좋지 않아서 남편에게 버림을 받아 어렵게 사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처럼 가족들이 어렵게 사는 모습을 보면서 선교사님의 마음이 다 무너져버린 것이다.
‘우리 가족들이 이렇게 멸시와 천대를 받으며 고통스럽게 사는구나. 나도 같은 사람이니 이렇게 살아야 하는데, 그런 내가 정말 멋대로 살았구나. 그런데도 교회는 나를 사랑해서 선교사를 만들어 주고, 나를 위해 주고 섬겨 주는구나!’
선교사님은 굉장히 감격해하며, 전에는 입을 열면 불평이요 원망이었는데 이제는 입을 열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말을 했다. 선교사님의 이야기를 들으면 우리 마음이 굉장히 행복했다. 선교사님이 하는 한 마디 한 마디가 우리에게 신앙을 가르치는 음성이 되고, 우리 신앙을 돕는 말씀이 되었다. 선교사님은 얼마 동안 서울에 있으면서 여러 형제 자매들을 만나 교제하여 우리 마음에 기쁨을 주었다. 지금까지 ‘그 선교사는 그래’ 하고 내가 알고 있었던 관념을 다 무너뜨리고, 완전히 새 마음을 우리에게 보여 주어서 얼마나 기쁘고 행복했는지 모른다.

선교사님은 떠나갔지만 내 마음에는 오랫동안 남아 있다
우리 선교회에 수백 명의 목사, 전도사, 선교사가 있다. 그리고 선교지에서 복음을 듣고 훈련을 받아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도 100여 명에 이른다.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해서 나는 깊이 있게 모른다. 가끔 실수하는 형제도 있고, 태만한 형제도 있고, 잘못하는 형제도 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가면서 하나님께서 당신의 은혜로 형제들을 하나 둘 바꾸어 주신다. 마치 베드로가 자기만 믿다가 예수님을 믿는 사람으로 변화된 것처럼, 하나님이 우리 교회를 잡고 계시며 형제 자매들을 바꾸어 주신다. 그래서 어느 목사님이나 선교사님을 한번씩 만나면 ‘저 사람이 옛날에는 안 그랬는데 어떻게 저렇게 변했지? 정말 놀랍다!’ 하는 마음이 든다.
앞에 말한 선교사님은 한국에서 얼마 동안 지내다가 아내와 함께 아무 미련 없이 아프리카로 떠났다. 선교사님은 떠나갔지만 내 마음에는 오랫동안 남아 있다. 그리고 선교사님이 말한 한 마디 한 마디가 마음에 남아서 내 마음을 붙들어 준다. 그 이야기들 앞에서 ‘나도 그 형제가 가진 마음을 가져야겠다’ 하고 마음을 바꾼다. 선교사님이 그리워지고, 그를 그렇게 바꾸어 하나님의 참된 종으로 만들어 주신 하나님이 놀라워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고 경배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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