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마음의 세계를 가졌던 세 명의 훈련병
다른 마음의 세계를 가졌던 세 명의 훈련병
  • 박옥수 (기쁜소식강남교회 목사)
  • 승인 2014.10.27 13: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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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끝까지 복음을, 끝날까지 주님과 (178회)

 
29번인 순종이, 30번인 창원이와 한 조가 되어
고속버스를 타고 원주로 가서 인터체인지를 돌아 나오면 뒷산에 군부대가 있는데, 내가 3년 동안 군생활을 했던 당시 통신훈련소이다. 한번은 우연한 기회에 지금은 통신단인 그 부대를 방문해 단장님을 만났다. 단장님에게 “제가 이 부대에 있다가 제대했습니다” 하자 단장님이 기뻐하며 부대를 한번 둘러보게 해주셨다. 내가 지냈던 내무반, 보초 서던 곳, 수송부, 식당…. 3년 동안 지냈던 옛 자취들을 느낄 수 있어서 정말 감격스러웠다. 부대를 구석구석 돌아보면서 단장님에게 지난 이야기를 들려드렸다. 그 이야기를 하던 중에 마음속에서 내가 그 부대에 있었던 동안에 하나님이 나에게 하신 일들이 떠오르며 뜨거운 마음이 복받쳐 오르는데, 억누를 길이 없었다.
그 당시 우리는 무엇보다 배가 고팠다. 배가 고파서 밤마다 탈영병이 생기고, 도망간 병사를 잡으려고 하고…. 부대에서는 탈영병을 막지 못해 결국 훈련병은 절대로 혼자서 움직이면 안 되고 세 명이 함께 움직이게 했다. 두 사람까지는 마음이 맞을 수 있지만 세 사람은 절대로 마음이 맞지 않는다고 그렇게 한 것이다.
당시 통신훈련소에서 훈련받던 우리 기수에서 나는 28번으로, 29번인 순종이와 30번인 창원이와 함께 한 조가 되었다. 우리는 늘 그림자같이 함께 다녔다. 한 사람이라도 함께하지 않으면 탈영병으로 오인받기에 변소를 가도 같이 가야 했고, 식당에도 같이 가야 했다.

그날 밤, 친구 순종이와 창원이가 구원을 받았다
매주 토요일이 되면 신병교육대에서 기본 훈련을 받은 군인들이 통신교육을 받기 위해 우리 부대로 몰려왔다. 통신훈련소에서 우리 기수가 제일 고참이었기 때문에 새로 들어온 훈련병들을 교육하고 저녁 점호를 마치면, 우리 동기들은 술을 마시고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놀았다. 어느 토요일 저녁, 그날도 점호를 마치고 동기들이 술을 마시고 즐겁게 노는데 내가 순종이와 창원이를 불러냈다.
우리는 옆에 있는 빈 내무반으로 갔다. 추운 겨울인데, 그곳엔 전기도 들어오지 않고 난방도 안 되는 곳이었다. 캄캄한 그곳에 앉아 나는 두 친구에게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옆 내무반과 우리가 있는 내부만은 너무 대조적이었다. 옆방은 환한 불빛 아래서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부르며 놀고, 이쪽 방은 춥고 캄캄했지만 귀한 복음이 흐르고 있었다. 그날 밤, 사랑하는 친구 순종이와 창원이가 구원을 받았다. 그날부터 우리는 한 마음으로 살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우리는 주일에 예배를 드리기로 마음먹었다
그날부터 우리는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그때 우리 부대에는 군목도 없고 교회도 없었기 때문에 주일이 되면 예배를 드릴 수 없었다. 우리는 주일에 예배를 드리기로 마음먹고, 토요일에 후배들이 들어오면 내무반마다 일일이 찾아가서 그들에게 통신훈련소 사정을 이야기하며 두려워하거나 긴장하지 말라고 이야기해 준 후,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파악했다. 거의 70~80퍼센트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했다. 그들 이름을 다 적은 후, 주일에 그 훈련병들을 모아 예배를 드리기로 했다. 예배 장소가 없어서 바람이 안 부는 따뜻한 골짜기의 양지 녘에서 예배를 드렸다.
순종이가 후배들 인솔하는 일을 맡았고, 창원이는 내무반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전부 맡았으며, 나는 말씀을 전하고 예배를 인도했다. 그 귀한 시간들을 우리는 함께 계속해서 가질 수 있었다. 당시 통신훈련소는 삭막해서 훈련병들이 초조해하고 두려워하며 탈영하는 일들이 잦았지만, 우리 세 사람은 하나님이 전혀 다른 마음의 세계를 우리 안에 만들어 주셨다.

“박 이병, 내가 뭐 도와줄 게 없나요?”
어느 날, 부대 스피커에서 “ROC 311기 박옥수, 교수 본부로 오라”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무슨 일이지?’ 교수 본부로 찾아가니 중위인 교육장교님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박 이병, 거기 앉으시오.” 내가 자리에 앉아 교육장교님이 물었다.
“박 이병은 군대 오시기 전에 사회에서 무슨 일을 했나요?”
“예, 교회 전도사였습니다.”
“과연 그러셨군요.”
교육장교님은 전날 일직을 서다가 골짜기에서 내가 예배를 인도하는 모습을 보고 마음에 굉장히 가책을 받았다고 했다. 그분은 교회에 열심히 다녔는데, 군대에 와서 술 마시고 담배 피우고 예수님과 상관없는 사람으로 타락했다고 했다. 장교인 자기는 그렇게 형편없이 사는데, 이등병 교육생이 예배를 인도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며 나에게 물었다.
“박 이병, 내가 뭐 도와줄 게 없나요?”
“예, 예배 드릴 장소가 필요합니다. 교실 하나 빌려주면 좋겠습니다.”
“아, 그러지요.”
그날부터  따뜻한 교실에서 예배를 드릴 수 있었다. 너무 기뻤다.
 
“하나님, 당신은 우리 기도를 들으시네요.”
우리 세 사람은 부대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게 굉장히 즐겁고 행복했다. 어느 날, 우리 셋이 모여 이야기했다.
“야, 훈련소 수료가 한 달 앞으로 가까워졌는데, 우리가 수료하고 나면 누가 이 일을 하지?”
“우리 셋 중에 한 사람은 여기 남아야 돼. 그래서 계속 복음 전하는 일을 해야 돼. 우리 부대는 매주 새로운 교육생이 수백 명씩 들어오고 나가니까, 그들에게 복음 전하는 게 중요해.”
그날부터 우리는 한 사람이 부대에 남게 해 달라고 함께 기도했다.
시간이 흘러 수료식을 갖던 날, 그동안 우리를 도와주신 교육장교님에게 인사를 하러 갔다. 인사하고 나오려고 하는데, 교육장교님이 “박 일병, 잠깐” 하고 나를 부르더니 “내가 박 일병이 우리 부대에서 나와 같이 일하도록 했어요” 하고 말했다. “교육장교님, 감사합니다!” 나는 교수 본부에서 나와 통신 벙커로 달려가 벙커 안에서 하나님께 기도했다. “하나님, 당신은 우리 기도를 들으시네요. 내가 이 부대에 있을 수 없는데, 교육장교님의 배려로 내가 이 부대에서 일하게 되었네요.” 그 후, 나는 3년 동안 그 부대에서 복음의 일을 할 수 있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치 않는 하나님의 마음이 있어서
세월이 수십 년 지나 창원이도, 순종이도, 나도 다 나이가 들어 70이 넘은 할아버지가 되었다. 그렇지만 우리가 그때 하나님께 받은 마음은 여전하다. 당시 통신훈련소에 천여 명이 넘는 장병들이 있었는데, 그 많은 장병들 가운데 우리 셋은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셔서 다른 사람과 전혀 다른 마음의 세계를 가지고 있었다. 함께 모여 웃고, 기도하고, 기뻐하고, 서로 위하고…. 그리고 잊을 수 없는, 기다란 기차빵을 같이 나눠먹던 그때 우리는 너무나 행복했다.
하나님은 나아만 장군 집의 계집종에게 그 어려운 환경에서 소망을 주고 기쁨을 주신 것처럼, 간음한 여자가 돌에 맞을 죽을 수밖에 없었을 때 그 여자를 살려 주시고 그 마음에 감사를 심으신 것처럼 우리 마음의 밭을 경작하시는 농부시다. 우리 마음이 아무리 삭막하고 더럽고 추해도 그 마음을 바꾸셔서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열매가 맺히게 하며 기쁨이 가득하게 하시는 하나님! 세상은 변하고, 사람들의 마음은 변해도,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치 않는 하나님의 마음이 있어서 참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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