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YF회장 명사초청 강연을 글로 올립니다
IYF회장 명사초청 강연을 글로 올립니다
  • 차영환
  • 승인 2001.10.10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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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기권 IYF회장 경남대 명사초청 강연 내용)

안녕하십니까? 제가 일주일 그전부터 이 모임에 나와 주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막상 앉아서 무슨 얘기를 해야 할까 준비하지는 않았지만 마음이 눌리고 답답하더라고요. 먼저 제목이 대학생들의 미래를 위한 제목이기 때문에 ‘무슨 얘기를 해야 할까’하는 마음도 들고 밤에 꿈도 꾸고 그랬습니다. 제가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 이야기 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만 대학생들 여러분들을 모시고 얘기 할 기회는 많지 않은데 상당히 마음이 떨립니다.
캠퍼스를 오면서 생각해 보니까 대학을 졸업한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햇수를 따져 보니까 20년이 훨씬 넘었더라고요. 무슨 특별한 얘기보다 그동안 제 삶 가운데 어떤 일이 있었는지 궁금하실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얘기와 지금 저는 어떻게 생각을 하며 또 내가 다시 여러분들의 위치로 돌아간다면 어떻게 살아보겠다는 그런 마음이 있거든요. 그런 부분들을 좀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여러분들 이탈리아의 바닷가의 두 어부 친구의 이야기를 아시는지 모르겠는데요. 저는 좋아서 가끔 이야기를 합니다. 두 어부 친구가 있었는데 한 친구는 굉장히 부지런하고 한 친구는 게으른 친구입니다.
부지런한 친구는 일찍이 일어나서 어구를 챙겨서 바다로 가는데 게으른 친구는 일도 하지 않고 매일 따뜻한 햇빛가에 누워서 보내니까 한날은 부지런한 친구가 안타까워서 그 친구에게 “야 너는 왜 일도 하지 않고 맨날 누워 놀기만 하느냐 너는 인생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있느냐”고 핀잔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친구가
“너는 무엇 때문에 그렇게 아침부터 열심히 돌아다니느냐”
“아침부터 열심히 해야 고기를 잡지”
“고기를 잡아서 뭘 하게”
“고기를 잡아야 저축을 하지”
“저축을 해서 뭐하게”
“저축을 해야 노년에 여유롭게 인생을 즐기지”
“나는 네가 많은 세월 후에 하려고 하는 것을 나는 지금 하고 있다” 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참 우리 삶이 그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여러분도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 열심히 살아갈 것이고 그래서 이런 강연회도 오셨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집니다. 제가 대학교 다닐 때와 바뀐 것이 있다면 열심히 공부를 하더라고요. 사실 저희 대학 다닐 때는 공부를 사실 별로 하지 않았거든요. 맨날 데모나 하고 그랬는데 요즈음 대학생들은 공부를 참 많이 하더라고요. 저희 회사는 증권회사이기 때문에 직원들을 뽑을 때 인터뷰를 하면서 보면 벌써 회사에 들어오기 전 회사에서 필요한 자격증들을 다 따고 들어오더라고요. 제가 그것을 보면 참 신기하더라고요. 그래서 언제부터 열심히 공부하느냐고 물어보니까 요즈음은 대학교 2학년 때부터 목표를 정해놓고 자격증 등을 따면서 공부를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열심히 노력을 하지만 무엇을 위해서 열심히 하는가에 대해서는 생각을 하지 않더라고요. 저도 마찬가지였거든요. 저도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무엇을 위해 공부하는가! 고민도하고 괴로워한 적도 있습니다. 그래서 친구들과 밤새 이야기도 했었습니다. 잠깐이었지만 고민도 했었지만 사실 답은 얻지 못하고 그냥 남들처럼 삶을 살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사는데 ‘무엇을 위해 사냐?’ 물어보면 아마 그 대답이 분명하지 않는 경우가 많을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서 크고 작은 많은 일들의 결정들이 있는데 “당신은 왜 그 일을 했습니까?”라고 물어보면 분명히 대답이 있습니다. 목적과 내가 그렇게 한 이유가 있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왜 경남대에 왔습니까, 왜 그 학과에 들어갔습니까”라고 물어보면 분명히 그 목적과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저도 연세대 사회학과를 간 이유가 있거든요. 서울대에 갈 성적이 안 될 수도 있는 거고 연세대를 좋아서 갈 수도 있는 것이고 분명히 내가 한 일을 결정할 때 목적과 이유가 있습니다. 만약에 친구가 삼성 PC를 샀다고 할 때 “너는 왜 삼성PC를 샀냐”고 물어본다면 분명히 그 이유가 있을 거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의 삶 가운데 이유와 목적을 갖고 일을 하거든요. 그런데 정작 우리 삶에 대해서는 누가 “너는 왜 공부하느냐” 저는 가끔 신입사원에게 질문을 하거든요. 너무 신기한 것이 그 질문을 받는 사람도 그렇고 같이 면접을 보는 임원들도 그렇고 다 웃습니다. 여러분들 그것이 너무 신기하지 않습니까? 우리 삶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왜 우리가 사느냐”에 대해서 질문했을 때 우스워하더라고요. 왜냐면 우리가 그 질문에 답을 갖지 않고 그리고
답을 갖고 있지 않는 것에 대해서도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더라고요.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저도 여러분과 같을 때, 고등학교 때 삶에 대해 그냥 살았거든요. 제 주변에 많은 사람들도 그 질문에 대해 답을 모르고 살아가더라고요. 저도 그냥 살았거든요. 저는 중반이 되도록 그렇게 시간을 보내었습니다. 제가 제 집안에 대해 얘기 드리자면 저는 대구에서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편안하게 자라고 열심히 학교 다니고, 잘 놀고, 칭찬도 받고 그러면서 자랐거든요. 제 마음에 어떤 마음이 있었느냐면 굉장히 출세해보고 싶었습니다. 저희 아버지께서 큰 사업을 하고 계셨습니다. 가끔 매스컴을 통해 출세한 분들이 “나는 자수성가했습니다.”하면 나는 그것이 굉장히 부러웠습니다. “자수성가”라는 말이, 바탕이 없는 데서 일어나는 것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저는 자수성가할 이유가 없는 거예요. 아버지가 너무 부유하시니까요.
그게 이상하게 저에게는 콤플렉스가 되어 있었습니다. 참 이상한 사람이죠. 학교 다닐 때 친구들이 가난해서 학비가 없어서 괴로워할 때 그게 그렇게 부러웠거든요. ‘나는 저 아이들처럼 삶의 근본적인 것을 놓고 고민하지 않는구나’하면서 약간 죄책감이 들고 그랬습니다. 출세에 대해서 욕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 실제 내 삶 가운데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그 어려움들을 내 노력으로 의지로 극복하는 것을 굉장히 좋게 생각했고, 또 일반적으로도 그것을 굉장히 좋게 보지 않습니까! 저는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연세대 상대를 들어가고 싶었는데 원서를 쓸 때 여러 복잡한 생각이 들고 성적도 안될 것 같아 낮추어서 그 학과를 들어갔거든요. 그러니까 학교생활이 재미도 없고 적응도 안되어져서 그래서 공부를 안했거든요. 성적에 신경을 안썼습니다. 제대를 하고 3학년 복학을 하니까 복학하는 날 사회학과 교수님이 제 손을 꼭 잡으시면서 “기권아 인제 공부 좀 해야지”하셨습니다. 막상 유학을 가려고 학점을 보니까 학점이 너무 안좋더라고요. 군대를 들어가기 싫어서 교련만 열심히 했지 다른 공부는 안했거든요. 오죽했으면 저희 과 여학생들이 제가 학교 나오는 것을 보고 싶어서 과대표를 시켜주었겠습니까 막상 걱정이 되니까 마지막에는 좋은 대학교에 유학 가고 싶어서 1년 남은 학기동안은 열심히 공부를 했거든요. 그 당시 안 좋은 학교에 원서를 넣어도 떨어진 적이 있었는데 다행히 제가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었습니다. 자서전을 써서 원서와 함께 보내었거든요. 학점이 2.5가 안되었었는데 그러면 심사 대상에서 탈락이 된데요. 유학을 간다고 얘기해놓고 못 가면 창피하잖아요. 그러니까 아무나 받아주는 그런 몇 군데 대학에 원서를 넣고 내가 가고 싶은 대학에 원서를 넣었습니다. 그 당시 웨스턴윌리노이 대학은 아무나 다 받아 준다는 거예요. 먼저 그 대학에 원서를 넣고 2주가 지나 연락이 왔는데 학점2.5가 안되어서 심사대상에서 제외되었다고 하더라고요. 걱정이 되어서 다른 대학에 원서를 보낼 때에는 소위 오토바이그래프라고 1,2,3학년 때는 학점이 안좋고 4학년 때는 평점이 좋아진 것을 자서전 식으로 소설을 썼습니다. 어렸을 때 서울에 올라와서 가장으로써 동생을 돌보아야 하기 때문에 일을 하면서 공부해서 점수가 좋지 않았다가 군대를 갔다와서는 공부를 할 수 있었다고 그런 식으로 썼는데 그래서 원하는 대학에 들어갈 수가 있었습니다. 그때도 내 마음이 너무 뿌듯하더라고요. 나는 어려움을 통해서도 일들을 해낼 수 있구나하는 마음 말입니다. 유학을 가서 결혼을 했는데 그 동안에 아버지 사업이 부도가 났습니다. 그때 저희 집안이 큰 어려움이 닥쳤는데 부도가 났습니다. 처리를 할 때 당신의 앞가림은 전혀 하지 않으셔서 어머니, 아버지는 형무소에 들어가시고 누님들도 오고 갈 때가 없는 하루아침에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때 저는 학교에서 2학기가 남았는데 자동차와 결혼할 때의 패물들을 팔아서 공부를 했습니다. 그때 어려워지면서 제 주변에 사람들이 걱정을 하더라고요. “어렵지만 그래도 마음을 잃지 않고 잘 해야지” 그러더군요. 물론 어머니 아버지는 형무소에 계시고 아기는 낳았는데 어려웠지요. 한편 제 마음에 “이제 자수성가 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는 마음이 들어 졌습니다. 친구들이 나에게 ”기권아 잘 되어야지“하면 나는 ”잘 될 수밖에 없는 것 외에는 나는 길이 없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아내에게도 ”내가 어려워진 것이 내 목표가 바뀌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계단이 있다면 예전보다 그 계단수가 많아졌을 뿐이다“라고 했습니다. 그 이후 진짜 열심히 살았습니다. 왜냐면 의지있게 열심히 산다면 못할 것이 없다는 그런 마음이 들고 그렇게 배워왔기 때문입니다. 어려웠는데 마침 애를 낳았습니다. 계속 꼬인다고 딸 쌍둥이를 낳았습니다. 아무도 축하해주는 사람도 없고, 장모님도 한심하다는 듯이 보시더라고요. 무책임한 놈이라고 보시는 것 같더라고요. 졸업을 하고 씨티은행에 취직을 했습니다. 그때 월급으로 백만원을 받았습니다. 그 당시 큰 돈이었습니다. 처갓집에 살면서 소위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앞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진짜 열심히 살았습니다. 출세하기 위해서 저한테 닥치는 그 어려움 자체가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10년 동안 정말 열심히 사회생활을 했습니다. 신앙도 열심히 했습니다. 새벽기도도 가고 산 기도도 많이 갔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술을 먹고 그랬는데 술을 아무리 많이 먹어도 그 다음날 새벽기도 가고 년초가 되면 산기도 가서 1년 동안을 회개하고, 원했던 것들을 결산했습니다. 보통 그 외국은행이 9시 30분에 출근을 했는데 저는 7시 30분이면 출근을 했습니다. 할 일이 너무 많았습니다. 저는 또 일요일이 싫었습니다. 일하는 것이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토요일 일찍 퇴근하니까 쉬면 컨디션이 회복이 되는데 일요일!
물론 교회를 가지만 사무실에 안나간다는 것이 너무 답답하더라고요. 여유가 없는데 놀면 돈을 써야 되니까 회사 나가는 것이 그렇게 재미있었고, 10년을 그렇게 살았습니다. 10년을 있어보니까 소위 내가 원했던 성공이 내 손에 쥐어지더라고요. 20대 후반에 당시 한국에서 최연소 지점장이 되었습니다. 30대초에 씨티은행에서 임원이 되었습니다. 또 아들도 낳았고 내 집도 마련했습니다. 처가살이를 하다가 내 집을 마련하니까 집에 런닝구 빤스바람으로 응접실에 앉아 있을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좋더라고요. 그 이후에는 더 큰집을 샀지만 그때 처음으로 내 집을 마련했기에 2달동안 집에 일찍 들어갔습니다. 집도 마련하고 어머니도 아버지도 모실 수 있고 사회적으로도 성공을 하니까 좋더라고요. 내가 원하는 성공을 30대 초반에 이루었는데 진짜 문제는 그때부터 있었습니다. 제가 씨티은행에 이사라는 자리가 너무 좋아 보이더라고요. 제가 처음에 들어갔을 때 임원이 되는 최고기록이 9년이었는데 저는 7년 만에 이루었거든요. 제가 임원이 되고 아들을 얻으니까 하늘이 돌짝만해 보이더라고요. 문제는 오랜 시간동안 얻고자하는 것을 얻었는데 정확하게 2주정도 행복하더라고요. 2주 지나니까 제 마음에 어떤 마음이 생기느냐면 임원이 되면 혜택이 있는데 집이라든가 차라든가 있어요. 처음에 기사가 운전하는 차 뒤에 앉아 있으니까 너무 가슴 벅차고 그랬습니다. 내가 이루려는 것을 그렇게 앞뒤 안돌아보면서 이루었는데 그것이 나에게 주는 행복감이라는 것이 2주밖에 안되더라고요. 좀 지나니까 제 마음에 “별거 아니네!”하면서 그 위가 또 보이더라고요. 허탈하고 당황스러웠습니다. 온 마음과 노력을 쏟아 얻은 이것이 결국은 2주 짜리 행복인가 하면서 망아지가 작대기 끝에 당근을 메어서 가면 당근을 쫓아가는 그 모습이 생각이 나더라고요. 벌써 내 마음에는 목표가 생겨 그 윗자리를 보고 있더라고요. 동일하게 저 자리에 가도 2주 밖에 안되는 행복이라는 마음이 들어졌습니다. 그러면서 신앙에도 동일한 질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제가 다니던 교회가 새벽교회를 중요시하는 교회인데 새벽집회를 갔는데 끝나고 통성기도를 했는데 평상시 하듯이 기도를 했습니다. 더 큰 아파트, 못사는 명일동에서 강남으로, 회사가 잘되게, 경제적인 부분, 아이들의 건강, 술을 끊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기도 제목에 대해 새삼스럽게 생각이 되어지더라고요. 옆에 있는 사람의 기도가 궁금해서 들어보니까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더라고요. 결국 잘되게 해달라는 것이죠. 그때 참 의문이 ‘예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라면 그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내 아파트 큰 데로 이사하는 것이냐! 아들 얻는 것이냐!’는 마음이 들어졌습니다. 그것을 위해서 예수님이 희생을 당하셨는가 생각하니까 그것이 연결이 되지 않더라고요. 또 기독교라 하고 하나님이라는 존재가 옛날 나무 밑에 물 떠놓고 비는 것이랑 모양만 다르지 다른 것이 무엇이 있느냐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다른 것이 없더라고요.
불교를 믿는 사람의 기도제목이나 별 다른 것이 없더라고요. 제 마음에 그러면 유일하신 하나님이 아들을 십자가에 죽이신 것이 내 출세를 위한 것인가 생각해보니 이치적으로도 맞지 않더라고요. 제 주변의 사람들을 보니까 집사들의 모습이 절에서 무릎 꿇고 앉아 있는 사람들의 모습과 다른 것이 없더라고요.
30대 중반에 신앙과 삶의 부분에 대한 의문이 동시에 있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다시 학교 다닐 때 내가 왜 사는가에 대해 고민했던 그 근본적인 질문을 다시 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그 질문에 답을 얻기 위해 내가 처음으로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천지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아들을 죽이면서 얻고자 했던 이것을 내가 구한다면 쉽게 만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후에 성경에서 발견한 말씀이 있는데 역대하 16장9절 말씀입니다.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전심으로 찾는 자에게 찾아가신다는 것입니다. 내가 왜 사는가에 대해 진짜 마음으로 구했습니다. 그때 오래되지 않아서 참 복음을 만났습니다. 박옥수 목사님을 만나게 되고, 말씀을 들으면서 죄 가운데 있던 제 모습이 인정되고 구원을 받지 못한 부분이 인정이 되어지면서 말씀을 통해서 제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때가 1990년 8월입니다.
여러분들이 왜 사는가 왜 태어났는가 무엇을 위해 사는가를 하나님 앞에 구한다면 하나님은 두루두루 찾으시고 감찰하시거든요. 분명히 여러분에게 답을 주실 것입니다. 저는 제 인생에 대해서 하나님 앞에 구했을 때 얼마 되지 않아서 찾았습니다. 요즈음 제가 매스컴을 많이 타니까 주위 사람들이 겉모습을 닮고 싶어하는 마음을 많이 갖더라고요. 기사가 나가면 대학생들이 메일로 많이 보내오는데 일반적으로 보는 것이 저 나이에 사장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회사를 맡아서 잘되면 얼마나 좋을까 하면서 겉모습을 닮고 싶어하더라고요. 사실 겉모습으로 따지자면 저보다 잘된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제가 자랑하고 싶은 것은 속모습이거든요. 예수님이거든요. 30대 중반에 제가 만난 그 예수님이거든요. 30대 중반에 제가 만난 그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후 10년간의 시간은 그 이전 10년과는 너무 다른 시간이었습니다. 여러분들 주변이나 매스컴을 통해서 존경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는 거예요. 그 분들은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면 그 삶이 먼 발치에서 본 것처럼 흠모할 만한 것이 있을 줄 아십니까? 십중팔구 그렇지가 않을 것입니다. 제 주변에 성공한 사람이 많거든요. 가까이 할 기회도 많습니다. 그 분들을 보면 제가 감히 얘기하고 싶은데 성공하면 성공할수록 다 불행하십니다. 사회적으로 성공했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매이는 것이 더 많다는 얘기입니다. 얼마 전 은퇴하신 ‘쟌-리드’라는 분과 ‘라나타워’ 라고 씨티은행에서 제가 모셨는데 그 분들을 보면 굉장히 불행한 분입니다. 가정적으로나 세상적으로나 자기의 어떤 시간이라는 것이 원해서 있는 것이 없습니다. 다만 시간이 지난 후 돈을 번 것은 있습니다. 결혼을 2번 3번 이혼하신 분들입니다. 라나타워라는 분의 아들은 아버지로 받아들이지 않고 떨어져 삽니다. 증오했습니다. 자기 어머니를 버렸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일을 열심히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일 외에는 괴로움을 잊게 할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결혼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겉보기에는 정상적인 것 같은데 한 꺼풀 벗겨보면 다 비정상적입니다. 얼마 전에 그 분도 경상도 분인데 사회적으로 자수성가하신 분입니다. 얼마나 멋있는지 저는 아내에게 꼼짝도 못하는데 그분은 아내를 100% 컨트롤합니다. 그래서 제 주위 모든 사람의 부러움이 되고 있는데, 이분이 어느 정도냐면 저녁에 아주 늦게 2시, 3시에 집에 들어가도 벨을 두 번 이상 눌렀는데도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면 딴 데 가서 자는 거예요. 그리고 본인이 늦더라도 아내가 자고 있다는 것이 용납이 되지 않는 분입니다. 이분이 가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굉장히 자신있는 분이었습니다. 문제가 생긴 것이 무엇이냐면 외동딸입니다. 고등학생이 되면서 말을 안듣는 거예요. 어느 날 집에 저녁에 왔는데 입에서 술 냄새가 난다는 거예요. 이분이 용납이 안되어서 때렸다는 거예요. 얼마 후에는 12시에 들어왔데요. 그래서 머리를 깎아버렸는데 1달이 지나 집을 나가버렸어요. 그러고 나서 일주일정도 후에 집에 들어 왔는데 어떻게 했을 것 같습니까 아무소리 못했습니다. 집에 온 것이 너무 고마워서입니다. 제가 그것을 보면서 이 사람은 자기의 생과 자기의 자식이 컨트롤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안되거든요. 사회적으로 크면 클수록 그 만큼 매인 것이 많다는 것이고 가정생활은 성공을 한 만큼 희생했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장들이 인터뷰를 하면 이런 얘기를 합니다. 저는 하루에 2끼를 먹고 손님을 3번 만나고 그렇게 다들 바쁘거든요. 제 주변에 사장님들을 보면 아이들과 얘기할 수 있는 분들이 몇 분 안될 것입니다. 신앙은 어떨 것 같습니까 장로이면서 사장님들이 많은데 교회에서는 장로인지 알지만 삶을 통해서 보면 전혀 그 사람이 장로인지 모릅니다. 왜냐면 다른 사람과 삶이 똑같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은 그런 분들의 삶이 좋아 보입니까? 제가 보기엔 큰 머슴같습니다. 그 분들의 삶을 보면 모든 것으로부터 매여있는 삶이거든요. 저의 10년 동안의 삶을 보면 그런 분들과의 삶과 다른 삶을 살게 해 주셨습니다. 매스컴에서 자주 나오는데 저는 6시 넘으면 회사 일을 하지 않습니다. 저희 회사 사람들의 농담으로 하는 얘기가 회사가 큰 위기에 닥치면 7시까지 일한다고 하거든요. 얼마 전 미국테러참사로 증권계에서 가장 큰 250억의 손실을 보았습니다. 상당히 큰 손실입니다. 그날 7시까지 일했거든요. 사람들이 저의 삶을 보면 정통적인 한국의 사장들이 해야하는 일들하고 삶은 전혀 다르거든요. 어떻게 보면 한국의 사장으로써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저는 저녁에 손님을 만나지 않습니다. 아침에는 7시 30분에 일찍 가지만 저녁에는 6시에 퇴근합니다. 그런 것을 사람들이 보고 제 주변에 친구가 “네가 사장 자리에 있는 것이 너무 신기하다”고 합니다. 제가 그럴 수 있는 이유는 제 삶을 제가 이끌어 나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끌어 나가시기 때문에 삶에 자신이 있기에 그렇습니다. 처음 굿모닝증권에 들어갔을 때 많은 사람들이 물어보더라고요. 증권을 해본 적이 있느냐고요. 투자해본 적도 없다고 했습니다. 증권계에 있어본 적도 없고 증권회사 사장이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고 했습니다. 42살이어서 나이가 어렸습니다. 모든 조건이 안되었습니다. 웃기는 일이 있었는데요. 부산 기장에서 지점을 오픈 했었는데, 테잎 컷팅을 했습니다. 9시에 전광판에서 파란 불이 올라오더라고요. 제가 어떻게 얘기를 했느냐면 우리가 테잎 컷팅을 하니까 주식세가 좋아져서 파란 불이 올라간다고 했습니다. 우리나라 주식은 사실 빨간 불이 올라가야 주식이 오르는 것이거든요. 그런데 저는 어렸을 때부터 배운 식으로 파란 것은 좋은 것, 빨간 것은 나쁜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파란 것이 올라가면 주식이 올라가는 줄 알았습니다. 저는 자주 주식을 모른다고 얘기합니다. 저의 주변에 임원 한 분이 “사장님, 주식을 모른다고 구태여 나오셔서 모른다고 얘기 햐셔야 합니까?”하고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기자들이 처음에는 굉장히 저를 싫어했습니다. 저희 회사에도 담당 기자가 있는데 기자들은 대접을 잘 받는 사람들이거든요. 처음에 기자들이 저를 아주 건방지게 보았다고 합니다. 제가 저녁, 점심 먹자고 안했거든요. 2년 정도 지나고 나서 어떤 기자가 처음에는 굉장히 건방지게 보았는데 나중에 보니까 자기 말고도 나에게 밥 못 얻어먹은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면서 이야기하더라고요. 그것이 그 사람들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던 모양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선으로 바꾸어 주시더라고요. 저 요즈음은 기자들에게 인기 좋거든요. 저녁에 식사하자고 하면 장로이기 때문에 술 못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면 저녁식사 하면서 이야기하는데 그들이 이것도 참 좋다면서 그럽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증권회사를 맡아서 일을 했지만 하나님이 순간순간 도우시고 이끄시는 것을 믿으니까 두렵지가 않았습니다. 제 삶이 너무 당연한 것이, 한번은 막내아들을 데리고 태국에 갔습니다. 제가 옛날에 태국에 산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애를 보았어요. 내가 태국에 간다는데 어떻게 행동하나 보았습니다. 애가 두 가지를 물어보더라고요. 언제 가는 것과 아빠와 옆에 앉아 같이 가는 것을 물어보더라고요. 무얼 먹을 건지, 어디에서 자는지 어떤 비행기를 타고 가는지 전혀 걱정을 않더라고요. 제가 그 애를 보면서 너 아빠는 비행기타고 가는데 너는 뭐타고 올 거냐고 물어보니까 자기도 비행기 타고 간다는 거예요. 너는 배타고 오라니까 그래도 아빠가 비행기인데 나도 비행기라고 당연하게 알고 있더라고요. 그 아들을 보면서 ‘아! 저게 믿음이구나!’라고 느껴졌습니다. 태국을 가든지 유럽을 가든지 초행길이라도 전혀 걱정을 하지 않고 그냥 즐기더라고요. 비행기를 타서도 즐기고 내려서도 마찬가지로 순간순간 즐기더라고요. 제가 증권회사의 경험이 전혀 없지만 두렵지 않는 것은 하나님이 같이 한다면 하나님이 이 일을 이루실 것이라고 믿음이 있었습니다. 또 여태까지 하나님께서 그렇게 해 오셨구요. 처음에는 굿모닝증권에 사장으로 올 때 직원들이 굉장히 나를 안좋아하더라고요. 제 고등학교 동창들이 거기 차장으로 있더라고요. 한 차장은 고등학교 동창이고 같은 반인데 그 차장은 서울대, 저는 공부를 못해서 연세대 갔고 파란 불이 증권 오르는 줄 아는 증권도 전혀 모르고 저녁에 손님도 만나지 않고 기자도 만나지 않고 재무부 사람들도 만나지 않으니까 사장으로 안보이는거죠 저는 팀빌딩하면 커피한잔 마시자고 그러죠 일도 열심히 안하죠 또 교회집회가 있으면 며칠씩 빠지죠 전혀 사장같지 않죠. 그런데 결과를 보니까 다 잘 되거든요. 저는 아침에 일찍 출근을 하면 참 사장이신 하나님 앞에 기도합니다. 하나님 오늘 이러이러한 일들이 저에게 있는데 도와달라고 합니다. 한번도 예외 없이 도와주시더라고요. 저는 어려움이 있으면 재미있어요. 왜냐면 하나님이 더 크게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250억 적자를 보아서 오늘 아마 신문기사가 났을 것입니다. 제가 그 일을 놓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니까 시편 91편 15절에 “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저희 환란 때에 내가 저와 함께 하여 저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나는 환란이 있으면 있을수록 좋구나 환난이 많으면 많을수록 하나님이 나를 도우셔서 영화롭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지난 10년 동안 그렇게 제가 살았습니다. 오늘 주제인 ‘tomorrow about this time’이라는 말씀은 열왕기하 7장1절에 있는 말씀입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이 성안에 있으면서 아람사람들에게 둘러싸여 포위가 되어 굶어 죽어가고 있을 때 하나님의 종 엘리사가 내일 이맘때에 양식이 있으리라는 얘기를 했는데 그 말을 믿은 사람은 복을 받았고 믿지 못한 사람은 저주를 받았습니다. 여러분들은 내일 이맘때에 어떨 것 같습니까 10년 후 이맘때에는 어떨 것 같습니까 20년 후 이맘때는 어떨 것 같습니까 여러분들의 내일 모습은 여러분들의 선택에 있습니다. 하나는 여러분들이 주인이 되어 사는 삶이고 또 하나는 하나님에게 여러분들의 삶을 맡기는 삶입니다. 저도 옛날에는 종교인들은 참 연약한 사람이다 내가 노력하면 되지 무슨 하나님을 믿느냐면서 이야기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내가 주인이 될 수 있는 삶은 없습니다. 내가 주인인 것 같지만 하나님을 제외하고 모든 것에 매이는 그 삶입니다. 여러분 교수님이 두렵지 않습니까? 친구들이 나에게 무슨 얘기할까 두렵지 않습니까. 회사에 들어가 상사가 두렵고 거래업체가 두렵습니다. 저 사람이 어떻게 볼까, 어떻게 말할까, 내가 주인된 삶은 하나님으로부터는 자유롭지만 모든 것에 매여 있는 삶입니다. 또 하나의 삶은 모든 것에 자유하지만 하나님으로부터는 매인 삶입니다. 선택권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우리가 원치 않는데서 하나님은 원하시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은 끝까지 기다리실 것입니다. 언젠가 여러분들이 10년간 노력을 하고 나서 ‘아 이게 아니다’라고 후회할 때 그때 돌아올 수 있고 죽음 앞에 후회하면서 죽을 수 있고 또 오늘 여러분이 이 기회를 통해서 참 질문을 해볼 수가 있을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들과 만난 것이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도 제가 30대에 만난 하나님을 지금 만나실 수 있다면 여러분의 앞으로의 삶이 얼마나 아름답겠습니까. 그 삶은 정말 힘있는 삶일 것입니다. 저는 회사에서 일하고 있지만 저는 하나님만 두렵습니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습니다. 제 주위에 사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지만 모든 것을 두려워합니다. 직원들, 노조, 재무부, 고객, 주주, 기자 등 무서워합니다. 하나님을 만난 삶은 너무 다릅니다. 그 삶과 진리를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기다리고 계십니다. 오늘 여러분들과 만나서 두서없이 말씀을 드린 것 같은데 여러분들도 제가 10년 전에 만난 하나님을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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