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수양관 건축허가가 나왔습니다
제 2수양관 건축허가가 나왔습니다
  • 대구기자
  • 승인 2001.12.08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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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역자를 비롯해서 모든 형제, 자매님들이 기도해 왔던 제 2수양관 건축허가가 나왔습니다.건축허가나 심의를 받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맛볼 수 있었습니다.아래의 간증은 김천중앙침례교회에 시무하시는 김태환 목사님의 간증을 옮긴 것입니다.

근간에 김천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요. 김천도 좋고 한번쯤 대덕에 올라가는 것도 그렇게 좋고 뭐 이런 집회에 오거나 일들을 하거나, 자거나, 깨거나, 그렇게 감사한 마음이 들어지는 겁니다.
이번에 교회하고 가깝게 있어서 건축 심의하는 일들 앞에 몇 번 다니면서 하게 되는 은혜를 입었는데, 제 마음속에 분명히 들어지는 마음이 이건 박 목사님의 일이고 하나님께서 박 목사님의 마음속에 말씀으로 내일 이맘때 정말 많은 학생들이 변화를 입을 것에 대해서 하나님이 보여주셨고 약속하셔서 정말 이 일들은 종의 일이라는 마음이 들어지면서 제가 그 일들을 하면서 정말 목사님 같으면 어떻게 이 일들을 처리할까? 목사님 같으면 이 사람에게 뭐라고 말씀을 하실까? 목사님 같으면 이런 문제 앞에 어떻게 하실까? 이런 부분들을 생각해 보았어요.
주님께서도 그렇게 기도하는 삶을 사셨고 또 룻기에 보니까 “그가 일을 이루기 전에는 쉬지 아니하리라”는 말씀을 보면서 정말 그렇게 힘있고 유력한 자였던 보아스도 이방 여자 얻어 들이는 것이 작은 일처럼 보이지만 그런 일들을 이렇게 성취하는 그건 정말 주님의 일이었기 때문에, 그 마음이 주를 향한 믿음을 가졌겠지만 쉬지는 않았더라구요. 주님도 그렇게 기도하셨고 목사님도 지난번 대덕에서 그런 문제를 두고 기도하는 걸 보면서 저런 종들도, 주님도, 보아스도, 저렇게 쉬지 않고 기도하고 은혜를 구했는데, 내가 이런 일 앞에 쉰다는 것이 너무 잘못된 마음인 것처럼 여겨지면서 ‘기도를 해야겠다’는 마음보다도 참 그렇게 간절해졌습니다. 처음에는 심의를 빨리 받았으면 하는, 일을 이루려고 하는 마음들이 참 많이 앞섰더라고요. 그런데 이 사람들을 만나면서 ‘아 이 일이 그렇게 쉽게 되는 일이 아니라’는 마음을 하나님이 제 마음속에 주셨어요.
대구대학교 교수님이 구조공학 박사인데, 심의라는 것이 건물을 짓기 전에 하는 건데, 도면을 우리가 미리 보내드리고 검토를 하고 만났는데, 몇 가지 제안을 하시더라구요.
“내가 건물 짓는데 방해를 하거나 그러고 싶은 마음이 없고 내가 건물 심의를 많이 하고 건축 설계도 많이 해 보았지만 이런 건물은 없다. 이건 구조적으로도 잘못된 건물인데 고쳐라.” “어떻게 고치면 되겠습니까?” A동 B동 C동이 있는데 C동이 1미터 80으로 B동보다 높은데 좀 낮추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어렵습니다. 암반이 많이 나와가지고 더 팔 수가 없습니다.” 했더니 요즘 장비가 좋아서 그런 것 덜어내는 건 일도 아니라고 하면서 덜어내라고 하는 거예요. “그 방법 말고는 없습니까?” 하니까 “좋다 그러면 엘레베이트하고 계단을 C동쪽으로 밀어 넣으라”고 하더라구요. 그것도 어렵다고 하니까 그러면 A동 B동을 다릿발 세워서 들으라고 하더라구요. “그것도 어렵다.” 그러니까 Y자로 꺾여서 현관이 좁아졌으니까 T자로 펴라고 하더라구요. “그것도 어렵다.”
심의위원은 열 다섯 명인데 각계 각 방면의 전문가들로 구성이 되어있고 다 똑똑하신 분들이고 제가 그분들 앞에서 이런 걸 설명을 하거나 그러기에 참 합당치 못한 사람인데 한계가 오면서 세 시간동안 이야기해도 내 말이 그 사람들에게 전혀 전달이 안 되고 그 사람 말이 내게 전혀 신청이 안 되는데, 그분이 “우리 고민 좀 더 하고 다시 만나자”고 하더라구요.
제가 그분 이야기를 가만히 듣다보니까 어떤 마음이 들어지느냐 하면 ‘박 목사님 참 바보다.’ 하는 마음이 들어지는 거예요.
그 날 저녁, 내가 정말 저런 사람 말이 내 마음에 믿어지지 종에게 하나님이 보여주신 뜻이 크게 내 마음에 믿어지지 않는 그런 사람인 것이 발견되면서 정말 내 마음에 하나님 앞에 이런 심의를 받고 안 받고 보다도 ‘내가 심의를 받으면 뭐할 것이며 못 받으면 어떻게 되겠나’ 싶으니까 심의 받고 못 받는데 마음이 쏠리는 것보다도 내가 종의 마음으로 이 일을 하고 못하고, 또 하나님을 얻고 못 얻고, 내가 심의를 못 받더라도 내 마음에 주님과 마음이 가까워질 수 있다면 내가 심의를 못 받는 한이 있어도 내 마음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수 있다면 하는 마음 쪽으로 바뀌어지면서 ‘목사님 같으면 이런 때 어떻게 하실까? 박 목사님 같으면 이런 사람 만나서 세시간 동안 이런 대화를 했는데 정말 이런 때 어떻게 하시겠는가?’ 하고 보니까 목사님은 기도하시겠더라구요. 목사님은 정말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형편보지 않고, 기도하시겠다는 마음이 들어지면서 제 마음에도 정말 이 일들이 이루어진다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것인데 싶고 그래서 기도도 하고, 또 목사님이 대덕에서 같이 기도회 하시면서 하나님이 도울 거라고 하는 말씀을 하시는데, 목사님이 이미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약속을 받았다 싶고 이미 그렇게 하나님이 허락하셨다 싶은 마음들이 제 마음속에 들어지면서 한번은 말씀을 보다가 요한 1서 5장 14절,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
이 말씀을 보면서 형편이 문제가 아니고 그 사람이 어떻게 말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는 그것이 참 중요하다 싶은 마음이 들어지더라구요. 그의 뜻대로 그러면 박 목사님의 뜻이 하나님의 뜻이고, 하나님의 뜻이고, 종의 뜻이고, 교회의 뜻이고, 이게 그 뜻인데, 이대로 구하면 하나님이 들으신다는 마음이 들어지면서 그렇다. 내가 저 사람 이야기를 듣고 뭘 우리가 지금 고쳐야 되는 것이 아니고 목사님의 뜻대로 목사님이 기도하시면서 하나님이 주셨던 지혜나 하나님 보여 주신대로 건물을 회전하게, 또 현관에 엘레베이트 가운데 두도록, 또 C동을 높이 들도록 계단만을 올라가도록 하셨던 것이 하나님의 뜻인데, 이 하나님의 뜻대로 구한다면 하나님이 이루시겠다는 마음이 들어지면서 이것이 바로 우리의 담대함이라고 이야기하더라구요.
내가 저 사람들 앞에 담대할 수 있는 것은 “그의 뜻 안에 있을 때, 정말 종의 뜻 안에 있을 때 그때가 바로 내가 가장 담대할 때다.” 내가 그 사람을 만나서 어떻게 말할까 머리를 쓰는 것이 아니고, 내가 그 사람 어떻게 비유를 맞출까 그게 아니고, 내가 종의 뜻 안에 있는 그것이 나를 담대하게 할 것이고, 그것을 주님은 이루실 것이고, 주님 뜻대로 종의 뜻대로 이 일들이 이루어지겠다 싶은 마음이 들어지면서 다시 만났는데, 정말 하나님께서 기적같이 그 사람들 마음을 바꿔주시더라구요. 물론 우리가 심의 받는 과정에 홀을 한 칸씩 이렇게 양보한 것이 있는데, 이 건물은 박 목사님이 구상하셨던 그 도면 그대로 심의가 되었고 건축허가가 나고 준공이 될 것이거든요.
그걸 보면서 너무너무 하나님 앞에 감사한 마음이 들어지면서 지난 11월호 기쁜소식지를 읽었어요. 그 때쯤 해서요. 저는 지금까지 목사님 기쁜소식지에 실렸던 글들이 그렇게 은혜스러운 글들이었는지 예전에는 몰랐습니다. 예전에는 봐도 ‘야 참 은혜스럽다’ 이 정도였는데, 이 말씀이 제 마음에 너무 은혜스럽게 자리를 잡더라구요.

믿음이 없는 사람과 믿음이 있는 사람들, 믿음이 없는 사람은 자기 인생을 자기가 책임지려고 하고 믿음이 있는 사람은 주님께 맡긴다는 그런 대목으로 시작하다가 뒷부분에 마리아에 관한 말씀을 하셨는데, 마리아에게 아들이 있을 거라는 말씀을 하셨을 때 마리아가 처음에는 그 부분을 받아들이기가 좀 어려웠잖아요. 정말 그랬겠더라구요. 내가 마리아 같아도 “정말 요셉이 어떻게 생각하겠어요? 또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겠어요?” 하고 자기 자신을 염려하는 마음에 정말 그 일들이 감당하기 힘든 일이었겠다 싶은데,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이루어지이다” 하면서 목사님은 그 부분을 주님 앞에 자기 영혼을 맡긴 자기 인생을 맡긴 주님 앞에 자기 영혼을 드린 사람들이라고 표현을 하셨는데, 요셉도 그렇고 마리아도 그렇고 정말 자기의 생각이나 자기 장래나 자기의 모든 것을 주의 말씀 앞에 드려진 사람들이더라고요.

그러면서 목사님이 지금도 하나님은 그렇게 당신에게 자기의 영혼을 드리는 자들을 찾으시고 그런 사람들을 지키시고 그런 사람들을 통해서 일을 하신다는 말씀을 보면서 제 마음에 너무 큰 소망이 생기는 것이 그렇다. 정말 헤롯이 그렇게 힘이 있고 권세가 있어서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지만 마리아나 요셉에게는 아무 힘도, 지혜도, 능력도 없는데, 주님께 영혼을 맡긴 그들을 주님은 정말 지키시고 인도하셔서 결국 마태복음 2장에 보면 헤롯이 죽고 예수님이 다시 돌아오는 그런 부분에 말씀을 죽 하셨어요.

내가 지금까지 복음을 듣고 난 이후의 신앙의 방향이 잡혀 버리더라구요. ‘그렇다. 내가 지금까지 내 계획이나 내 생각이나 내가 나를 염려하고 내가 나를 지키고 내가 나를 위하는 그런 마음을 가지고 살았지 이렇게 드려진 삶을 살지 않았구나.’ 제 마음에 정리가 되더라구요. ‘그래 내 삶이나 내 사역이나 내 원함이나 내 계획이 아니구나. 나는 교회의 것이고, 종의 것이고, 주님의 것이구나, 내가 앞으로 내 인생이 어떻게 될지, 내가 앞으로 무슨 일을 하게 될지, 내가 어떻게 살게 될지 내 소관이 아니구나, 나는 그냥 이 교회 앞에 내 인생을 맡긴다면 정말 교회가 인도하실 것이고 교회가 합당하게 쓰시겠다.’ 그러면서 마음에 정리가 되더라구요.

이제 심의가 끝나고 어제 건축허가가 나서 오늘 6, 7만원인가 그 돈을 내면 정식으로 건축허가를 받게 되는데, 어제 목사님한테 건축허가가 나왔다고 전화를 드렸더니 “자네가 수고했네” 그렇게 말씀하시더라구요. 제가 옛날에 참 듣고 싶어했던 이야기가 바로 그 이야기였거든요. “자네 수고했네.” 저는 그런 이야기들을 때 너무너무 좋아서 그런 이야기를 오랫동안 갖고 제가 교회 앞에 설 때 “목사님 건축허가가 나왔습니다” 하고 이 건축허가를 내 머리에 이고 가서 내가 건축허가를 받은 사람으로 내가 교회 앞에 섰더라구요. 영혼이 몇 명 구원받으면 몇 명 구원받았습니다, 목사님 예배당을 지었습니다 하면서 그걸 들고 나갔던 모습들이 보여지면서 제 영혼을 좀 돌아보니까 그럴 때마다 사단이 내 마음을 높여놓았고 세워놓았다 싶어요.

전에는 “아이구 목사님 우리 교회 한번 오십시오.” 이런 이야기가 제 마음에 그렇게 듣기가 좋고, 오랫동안 남았고, 나를 인정해주는 것 같았는데, 근간에 들어서는 그런 사람 옆에 가고 싶은 마음이 안 들어지더라구요. 정말 그런 사람, 어떤 전도자 동역자라도 그런 분들 옆에 참 안 가고 싶고 목사님께서 ‘수고했네.’ 해도 내 마음에서 “목사님, 목사님께서 아시잖아요. 그게 내가 한 일이 아니잖아요.” 내 마음에 눈꼽만큼도 내가 수고했다 그렇게 묻어나는 마음이 전혀 없이 “이건 목사님이 기도하셨잖아요. 이건 목사님의 일이잖아요. 이건 목사님께서 하나님께 구해서 하나님이 하신 일인데, 내가 왜 거기에 들어가겠습니까? 저는 므비보셋이고, 저는 여전히 부끄러운 자고, 여전히 정말 교회의 은혜를 못 입으면 오갈 데가 없는 정말 부끄러운 인생인데요” 그런 마음이 너무 분명하게 들어지고, 지금도 교회 앞에 참 고개를 들 수 없는 정말 하나님 은혜가 아니면 안 되는 마음 하나밖에 없지, 내 마음에 전혀 수고했다는 그런 마음이 없어요. 목사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예 누군가 수고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아닙니다. 목사님. 저는 안 그렇습니다.” 그런 마음들이 제 마음속에 들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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