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인생의 따뜻한 맛을 남기고 떠난 이일향 목사님
[라이프] 인생의 따뜻한 맛을 남기고 떠난 이일향 목사님
  • 박옥수(기쁜소식강남교회 목사)
  • 승인 2021.02.06 00: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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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2월호 기쁜소식
땅끝까지 복음을, 끝날까지 주님과_253 | 박옥수 목사 간증

 

 

나는 우리 선교회 소속의 목회자가 아닌 많은 목사님들을 만나 보았다. 목사님들도 인간이기에 그 삶이 제각각이지만 그래도 하나님을 향한 사명감을 가지고 있어서, 실수도 있지만 주님을 위해 일생을 드리려는 목사님들의 삶이 일반 사람들과 다른 것은 사실이다. 

“박 목사님, 꼭 오셔야 합니다!”
1978년 겨울 어느 날, 낯선 목사님 한 분이 나를 찾아오셨다. 나환자이며, 나환자 교회의 목사라고 자신을 소개하셨다. 나이가 나보다 스무 살쯤 많은 분이었다. 목사님이 말씀하시길, 교회마다 겨울에 ‘심령 부흥회’를 하는데 자기 교회에서도 군목으로 있는 어떤 목사님을 부흥회 강사로 초대했다고 한다. 그런데 집회를 1주일 앞두고 그 목사님이 전화해서 바빠서 못 간다고 간단하게 이야기했다는 것이다. 교회에서 집회를 준비하다가 그 소식을 듣고, 더욱이 나환자 교회이기 때문에 섭섭함이 더 컸다고 한다. “바쁘긴 뭐가 바빠? 목사가 말씀을 전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뭐가 있어? 우리가 나환자니까 오기 싫어서 그런 거지.” 하며 원망하는 사람도 많다고 했다. 
그런 일들을 이야기하며 나에게 집회를 인도해 달라고 부탁하셨다. 내가 가겠다고 하고, 날짜를 정했다. 목사님은 염려스러웠는지 다시 당부하셨다. 
“박 목사님, 꼭 오셔야 합니다!”
“제가 꼭 갈게요.”
“만일 이번에 박 목사님까지 안 오시면 우리 교회 성도들 모두 실망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게 됩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하늘이 두 쪽이 나도 갈게요.”
목사님은 그래도 안심이 안 되는지, 잠깐 같이 나가자고 부탁하셨다. 따라나서니 나를 데리고 갈비 집으로 가서 저녁을 사주셨다. 그때는 우리가 가난해서 갈비는 생각도 못했던 때라 저녁을 잘 먹었다. 

나 같은 인간이 뭐라고 나환자촌에 가기를 주저하랴?
집회를 3일 앞두고 새벽에 예배당에 가서 기도를 했다. 난생처음 나환자촌에 가서 나환자들과 같이 지내야 하기에 ‘식사는 어떻게 할까? 잠은 어떻게 잘까?’ 궁금했다. 뭔지 모르지만 나환자들과 같이 지내는 것이 마음에서 주저가 되었다. 그때 성경 말씀 하나가 떠올랐다. 마가복음 14장 3절의 “예수께서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라는 말씀이었다. 
그 말씀 앞에서 ‘거룩하시고 존귀하신 예수님께서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 식사하러 가셨는데, 나같이 못난 인간이 뭐라고 나환자촌에 가기를 주저하랴?’라는 마음이 들었다. 하나님이 나환자에 대해 마음을 다 열게 해주셨다. 성경에 보면, 나환자가 일반 사람들과 같이 지내려면 전신이 문둥병자여야만(레 13:13) 가능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전신 문둥병자인 시몬의 집에 가서 식사를 하셨다. 예수님이 문둥이 시몬의 집에 가셨는데, 내 안에 나환자에 대해 꺼리는 마음만 있어도 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환자 교회에 가기 3일 전, 하나님은 내 마음에서 나환자에 대해 꺼리는 마음을 다 벗겨주셨다. 

나는 그 아름다운 밤을 잊지 못한다
집회 날짜가 되어 나환자 교회로 갔다. 아주 추운 겨울이었다. 내 마음에 나환자에 대해서 꺼리는 마음이 전혀 없고 아주 평안했다. 집회가 시작되어 말씀을 전하고, 설교를 마친 뒤 ‘죄 사함 받기를 원하는 사람은 손을 들라’고 했다. 30여 명이 손을 들었다. 예배당이 추워서, 손을 든 사람들에게 모두 내가 지내는 방으로 오라고 했다. 방이 빈틈없이 사람들로 꽉 찼다. 
나는 그 아름다운 밤을 잊지 못한다. 밤 10시에 시작해서 새벽 1시까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가 어떻게 우리 죄를 씻었는지 자세히 설명했다. 그 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들 모두 “할렐루야!” 하며 기뻐하고, 눈물을 흘렸다. 그 소리를 듣고 옆방에서 주무시던 이일향 목사님의 사모님이 무슨 일이 생겼는지 궁금해 와서 곧바로 죄 사함을 받고 기뻐하셨다. 
구원받은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간증을 했다. 모두 자신이 어떤 죄악에 빠져 살았는지 이야기하고, 그 죄에서 벗어난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나환자들이 서로 앞다투어 간증을 했다. 교회 장로님 아들이 말했다. “저는 아버지 몰래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셨습니다.” 방에 있던 장로님이 아들 이야기에 깜짝 놀라셨지만, 죄 사함을 받았기에 즐거워하셨다. 처음으로 간 나환자촌에서 맞는 첫 밤이 감격으로 가득 찼다. 
다음날도 예수님의 피가 우리 죄를 어떻게 씻었는지 이야기했다. 날씨가 몹시 추웠지만, 우리는 평생 가장 기쁜 한 주간을 보냈다. 
그 후, 우리 교회와 영천에 있는 나환자 교회의 성도들이 한 가족이 되었다. 이 목사님은 나보다 나이가 스무 살이나 많았지만 형제처럼 가깝게 지냈다. 나환자촌에서는 양계를 많이 하기에, 우리 교회 성도들이 그 교회에 찾아가서 놀다 오면 그냥 보내지 않고 그 교회 성도들이 꼭 닭을 몇 마리 잡아서 보내주었다. 너무 고마웠다. 
이일향 목사님이 여수 애양원교회의 목사님을 소개시켜 주셔서 그 교회에 가서도 집회를 했다. 그 외에도 열 개 남짓의 나환자 교회들에 가서 복음을 전하는 집회를 했다. 그리고 그분들과 친형제가 되었다. 나는 여러 나환자 교회의 목사님들과 교류했는데, 그분들에게서 다른 사람에게서 느끼지 못한 따뜻함, 기쁨, 감사를 느꼈다. 나환자촌 연합 청소년 수련회 때 주 강사로 초청받아 가서 말씀을 전하기도 했다. 

나병에 걸려 살아온 날들을 꾸밈없이 들려주던 목사님
몇 년 뒤, 나는 서울로 이동해 왔다. 내가 서울로 온 뒤에도 나환자촌 목사님들이 한번씩 나를 찾아오셨다. 대여섯 명이 모여 사람들이 보지 않는 밤늦게 내가 살던 은마아파트에 와서 밤새도록 성경 이야기를 나누고, 새벽 동이 트기 전 어두울 때 돌아가셨다. 
한번은 이 목사님이 ‘나는 가지 않고 하루 더 있다가 가고 싶다’고 하여 하루 더 머무셨다. 목사님은 나에게 “박 목사님, 내가 방송을 하고 싶습니다.” 하며, 자신의 기쁜 마음을 방송으로 전하고 싶다고 하셨다. 기독교방송국에 내가 아는 사람이 있어서 소개해 주어, 목사님은 ‘새롭게 하소서’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하셨다. 목사님은 극동방송국에서도 설교하길 원해 길이 열려서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과 소망을 주는 목사님이 되셨다. 이 목사님이 극동방송국에서 방송한 것이 계기가 되어 나도 극동방송국에서 오랫동안 방송 설교를 했다. 
한번은 이 목사님이 나병에 걸려 살아온 날들을 이야기하셨다. 나는 눈물을 참으면서 이야기를 들었다. 겨울에 어느 다리 밑에서 가마니를 덮고 잤는데 가마니가 얼어 빳빳해져서 차가운 바람이 들어와 자다가 일어나서 가마니를 발로 밟아 부드럽게 만들어서 덮고 잔 이야기, 밥을 얻으러 다닌 이야기 등을 꾸밈없이 들려주셨다. 나병에 걸려 살아온 날들이 너무 마음 아팠다. 목사님은 그 뒤 목회자가 되었고, 예수님을 만나 죄 사함을 받으셨다. 

누구보다도 따뜻함을 남기신 목사님을 한번씩 그리워한다
짧은 기간이나마 내 곁에 가까이 계시면서 인생의 따뜻한 맛을 느끼게 해주신 목사님. 어느 날 이 목사님이 주님 품으로 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뒤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지금도 그때 만났던 따뜻한 사랑이 그립다. 몹쓸 병에 걸려 멸시와 천대를 받으며 한 많은 인생을 사신 목사님, 그리고 예수님을 만나 많은 나환자들의 마음에 기쁨과 소망을 주신 목사님, 지금은 나병도 없고 멸시도 없는 하늘나라에서 우리를 기다릴 목사님. 지금도 나는 형님 같은 목사님을 만나게 해주신 주님께 감사를 드린다. 내 마음에 어느 누구보다도 따뜻함을 남기신 목사님을 한번씩 마음에서 그리워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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