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전도여행 계속...(사진한장 첨부)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전도여행 계속...(사진한장 첨부)
  • 이상훈
  • 승인 2002.11.08 21: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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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월)~11/6(수)
카자흐스탄이란 이름을 들었을때 먼저 연상되는것은, 중앙아시아의 유목민 그리고 회교국가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막상 와서 느낀 것은 러시아인도 많고, 분위기도 러시아의 연장인것처럼 느껴졌다.
특히 온수관이 다 공급이 되어, 따뜻한 물은 아낌없이 쓴다.
인종도 다양하다. 카작인들은 동양인과 좀 비슷하나 늘씬하고 다소 이목구비가 뚜렷하다.
거리에는 나무와 공원이 굉장히 많다. 원래 대부분 초원지대인데, 100전쯤 만년설의 물을 끌어들였고, 나무를 굉장히 많이 심었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는 알마타에 국한된것지 모르겠다. 다른 지방에 갔다온 형제들 얘기로는 황량한 초원지대가 많았다고 한다.

계속해서 전도나갔고, 복음도 전했다.
전에 갔던 큰 교회에 다니던 사람들은 감정적이었다. 말씀을 듣고 참 기뻐했으나, 나중에 마음이 변하여 우리를 배척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여러 분에게 계속 “죄사함...” 러아아어판을 주고 주소를 적었는데, 모두들 감사하게 받고 진지하게 읽은 사람도 많았다.
한번은 점심 식사를 하러 식당을 찾다가 게중에 좀 고급식당을 들어갔다.
한끼 식사가 300팅게(3,000원 쯤)라 되어있는데, 거기선 비싼거지만 우리에겐 괜찮은 가격이라 생각되어 들어갔다. 그때 선교사님 얘들 합쳐 8명이었는데, 식사안한 사람들이 5명이라 1,500팅케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음식은 코스로 나왔다. 처음에 오이 무침, 닭죽으로 된 국수, 다음 생선튀김과 감자이게어 만든 음식이었는데 다 우리 입맛에 맞았다.
정훈이와 시은이(선교사님 아들)를 위해 아이스크림을 시켰다. 그리고 너무 맛있어서, 2개 더 시켰다. 정말 그렇게 맛있는 아이스크림은 처음이었다. 그런데 나중에 계산해보니까 아이스크림 하나에 500팅게였다. 우리는 다 놀랐지만, 하는수 없이 값을 다 치루었다.
그 식당의 주인 아주머니와 교제가 좀 되었는데, 나이가 거의 60된 러시아인이었다. 아나똘리 전도사님과 교제를 나누었고 책을 줬는데, 아주 진지했다. 자기도 교회다니는데, 물론 죄인이라고 했다. 다음날 저녁 모임시간에 우리 교회로 찾아왔는데, 참 반가왔다. 아이스크림 값이 아깝지 않았다.
정원진 형제님은 대학에서 강의하시는 고려인 할아버지와 교제했는데, 공산주의에 물들어 어려웠지만, 끝내 복음을 받아들였다.
11/5일 저녁 늦게 황용성 형제와 정민화 형제, 그리고 마랏 선교학생이 도착했는데, 늦게 까지 간증을 들으면서 너무 즐거웠다. 하나님이 고려인들을 만나게 하셔서 복음도 전하고 융숭한 대접도 받아 간증이 충만하였다.
다음날 아침에는 이재형 형제, 이진규 형제가 안드레이 선교학생과 도착했다. 전도팀마다 간증이 풍부했다. 특히 형제들의 실수로 인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경험한 것은 참 마음에 남았다.
몇몇이서 고려인 할머니와 계속 교제했는데, 이진규 형제님은 처음으로 복음을 전했는데, 그 할머니가 구원을 받아서 참 기뻐했다.

11/7(목)
관광하는 날이다.
아침에는 사우나 하러 갔다. 큰 사우나장이 있었는데, 러시아식 사우나는 너무 뜨거워 숨쉬기도 힘들었다. 러시아식 사우나는 상수리나무잎을 부채처럼 묶어 사우나장 안에서 온 몸을 치는데, 뜨겁지만 시원하였다. 그렇게 하면 몸의 독소가 빠지고, 일주일동안 몸의 시원함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핀란드식 사우나장도 있었는데, 거기는 많이 안뜨거워 오래 있었다.
다들 ‘역시 우리에겐 온탕이 최고다’고 했다. 거기엔 온탕이 없었다.
점심 식사는 특별히 양고기를 숯불에 구워 먹었다. 양념은 우리 입에 익은 불고기 양념이었다. 식사후에는 산으로 갔다.
쨘샨이라는 산인데, 그 산이 바로 중국의 태산이라고 했다. 정말 높긴 높았다.
최고봉이 해발 7,200미터 였는데, 우리는 3,000미터까지 올라갔다. 계속 차를타고 오르막길로 질주했다. 그리고 올라가서는 리프트를 3번이나 갈아타고 계속 올라갔다. 거기에는 만년설이 있었다.
풍경은 우리 나라에서는 전혀 볼수 없는 광경이었다. 나무들은 하늘로만 치솟아 있었고, 산들은 정말 웅장했다. 우리는 눈위에서 사진도 찍고 뛰어다녔다.
곧 아스타나 전도팀이 도착하여 산에 함께 올라왔다. 너무 반가웠고, 함께 사진도 찍었다.
아스타나 전도팀은 윤철원, 민삼기, 성호경 형제로서 7명이나 구원받아 돌아오기가 너무 아쉬웠다고 했다.

산에서 내려와서 급히 식사하고 바로 우즈베키스탄으로 향하는 기차를 탔다.
우리가 처음 타보는 침대칸으로만 되어있는 기차이었다. 한쪽에는 좁은 복도가 있고. 한칸에 2층침대가 좌우에 쌍으로 되어있어 4명이 지낼수 있다. 기차는 비교적 느린 속도로 달리고 역마다 정차하였다. 700km 거리를 13시간을 달렸다.
기차 안에서 정원진 형제 부부의 여권을 알마타에 두고 온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참 난감했지만, 정형제님 부부와 마랏 형제를 기차 종착역인 침켄에서 기다리면서 전도하도록 했다. 그곳에도 고려인이 있고, 딸띠끄르간 전도팀이 만난 고려인의 친척이 거기 있었다고 했다. 또 하나님이 우리 실수를 통해 일하실 것을 기대하며 우리는 계속해서 차에 짐을 가득 싣고 국경으로 향했다.

국경의 통관 절차는 정말 복잡했다. 여러차례 여권을 보여주며 서류 작성도 하고, 카자흐스탄 영토를 지나 우즈베키스탄으로 들어갔다. 우즈벡 입구에는 큰 조각문이 있었는데, 그 윗부분은 둥근 돔형태로 생겼는데, 첫눈에 회교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우즈벡은 카작보다 회교 분위기가 강했다.
거기서도 복잡한 통관 절차를 거쳐 들어갔는데, 사람들의 의상에서부터 TV에서 많이 보는 중앙아시아 다운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유난히 우리나라 대우차가 많았는데, 60~70%가 대우차였고, 경찰차도 대우차이었다.

이주일 전에 우즈벡으로 들어오신 박영철 선교사님 아파트에 도착했다.
그 아파트는 한동안 모임을 가질 수 있을만큼 크고, 수도 타쉬겐트 정 중앙에 위치해 있었다. 지하철 역도 5분 거리에 있어 어디든지 쉽게 이동할 수가 있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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