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가 죽고사는것은 네마음에 달렸다
파리가 죽고사는것은 네마음에 달렸다
  • 박연희
  • 승인 2000.06.0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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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마산집회중인거 다아시죠?
류상록전도사님께서
6월7일 오전에 전하신 말씀입니다.
오전으로는 주로 성도의 삶에 대해 전하십니다.
간단하게 주제만 요약하려다 너무 말씀이 좋아서 그냥
쭉 다 적었습니다. 끝까지 읽으시면 은혜스러울겁니다.

본문:마태복음13장24절-30절

대구의 개구리 소년사건이 십몇년이 지났으나 그부모는 여전히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죽은걸 확인하면 포기를 하고 새삶을 살텐데. 모르니까 미련은 못버린다.
다윗이 밧세바를 범하여 낳은 아들이 죽게 되었을 때
살려주기를 바라고 기도하다가 하나님이 죽여버렸을 때 다윗은
마음에서 그 죽음을 받으니까 깨끗이 포기하였다.
그런 다윗에게 하나님은 여디디엘(솔로몬)을 주셨다.
하나님의 뜻이 나타났을 때 마음을 정하고 굴복하는 삶
말씀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마음 앞으로 마음을 옮기고 정하는
것이 신앙이다.

월남전때 미군이 국민들에게 M16 소총을 지급해주면
얼마후 월맹군에게 다 팔아넘어가 있었다.
지원해 줘도 소용이 없는 전쟁이었던 것이다.
이유는 적군과 아군의 개념이 희미해져버린 베트남처럼
주님으로부터 온 것과 사단으로부터 온 것이 구별이 안 되면
오히려 우리는 주님과 적군이 되어 싸움을 싸운다.

거룩하다는 것은 구별되다,구분되다는 말이다.
깨끗한집과 더러운집의 차이는 똑같이 똥이 있고 쓰레기가 있지만
있을곳이 있을곳에 있는 집은 깨끗한 집이고 그 구분이 없는
집은 더러운 집인것처럼 마음에 사단의 것과 하나님의 것에 대한
구분이 없을 때 아이가 똥이 더럽다는 관념이없이 주물럭거리듯
그것을 빼앗아도 다시 만지는 것처럼
우리도 사단이 주는 생각과 마음을 계속 가지고 세상의 것들을
주물럭거리는 삶을 살게 된다.
우리마음은 전쟁터와 같다.
주님이 주시는 마음과 사단이 주는 마음이 한치의 오차도 없이 싸움을
하는데 이기는 쪽으로 끌려간다.
사울이 이스라엘의 왕일때는 내적인 싸움은 없다.
구원받기전 우리의 마음이 사단이 왕일때는 갈등없이 육신대로
사는 것처럼 다윗이 왕으로 세움을 입고 난 후 형편적인 왕이
두명이 되고 난 후 싸움이 일어난다.
표면적으로 사울은 가능성이 있어보이고, 크고,
다윗은 연약하고, 망할 것 같아도 하나님이 다윗과 함께 하셨다.
사울의 집과 다윗의 집에 전쟁이 오래매 사울의 집이 폐하여진다.
믿음의 눈이 없는 사람은 형편으로 큰 사울을 따르게 된다.
말씀편에 선 사람은 사울이 아닌 다윗을 따른다.
사무엘상 15장에서 31장 까지는 사울이 왕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보여도 이미 말씀에서는 폐위된 상태이다. 표면적으로는 왕의 존재가
있는것처럼 보인다.
하나님은 사단을 없앤 것이 아니라 죄의권세를 멸했다.
사단이 왕이었을때는 하나님께 이끌릴수 없기 때문에 죄에 이끌리는
삶을 사는게 당연했지만 그리스도인이 됐다는 것은 하나님앞에 이끌릴수
있는 조건을 갖게 된 것이다.
이제는 사단이 마음대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동의를 요구하고 응하면 이끌림을 받는 것이다.

느헤미야 6장 5절에 도비야와 산발랏은 느헤미야에게 거짓말로 두렵게
하려 한다. 직접 느헤미야를 죽이지는 못한다.
귀신이 물없는 곳으로 다니는 것처럼 말씀이 없는 사람을 사단은
넘어뜨린다. 히스기야왕을 속이는 산헤립처럼, 하지만 하나님편에 서
있는 히스기야왕이나 느헤미야는 그것에 넘어가지 않는다.
하나님은 이전쟁은 너희가 싸울것이 없다고 하시고 하나님이 싸울테니
까 지켜보라고 말씀하신다.

사단이 할수 있는 일은 두렵게 하는 일 ! 그 까지만이다.
결국 그 두려움이 범죄하게 한다.

신명기 22장 22절-27절 말씀은 통간과 강간에 대해 말씀하고 있다.
들에서 라 함은 구원을 받기전 주님의 품이 아닌 곳을 이야기한다.
약혼한 여자가 통간을 함은 구원받은 사람-우리는 예수님과 결혼하기
위해 약혼된 그리스도인-이 마음을 세상에 내어주고, 세상과 간음하는
것을 스스로 허락하는 것을 이야기 한다.
강간하려고 할 때 소리만 지르면 누구든 도와줄 것이다.
소리지르는 삶이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마음의 소리를 내지않고 가만히 있으면 사단에 의해 통간을 당하고
있는 것과 같다.
교회 안에서 끊임없이 내육신의 악하고 연약한 것들을 소리지르면
주님은 언제든지 그것들에서 나를 자유케하시고 풀어주신다.

마태복음 16장 19절에서 천국 열쇠를 네게주리니...
땅-우리마음-에서 매여버리면 하나님도 일할 수가 없다.

중국에 다녀온 거제형제님의 간증을 들어보면
자매님 아이가 항생제 중독이 되어 죽게 생겨서 그자매님이 원망
을 하면서 이 아이가 죽기만 하면 교회도 안나오고 그런 하나님
안믿는다면서 다른 자매들도 다 그렇게 하나님을 죄인만들어
놓고 있는 모습을 보며 죽은 나사로에 관한 말씀을 하면서 하나님을
믿지 않고 사는 자매들의 마음을 고치기 위해 아이를 아프게 하신
부분에 말씀을 전하자 자매들이 마음을 바꾸고 그후로 아이도 많이
좋아졌다고 한다.

고린도후서1장20절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예하시는 예수님
우리가 안되지요?하면 그분은 예!안됩니다. 우리가 되지요? 하면
그분은 예! 됩니다. 하신다. 구원받은 사람이 자기에게 초점을
맞추면 정말 어렵다. 맨날 안되는 것밖에 안보인다.

이사야 27장3절 말씀을 보라
여호와는 포도원지기가 되며 밤낮으로 간수하여 아무든지 상해하지
못하게 하리로다. 우리는 낮으로 는 지킬지 몰라도
밤에는 할 수가 없다. 그러나 포도원을 위하시는 주님이
간수하시고 질려와 형극을 밟아 불사르신다.
본문 말씀으로 돌아가서
가라지를 뿌린 사단의 목적은 알곡에 관심을 못갖고
가라지에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뽑는데 신경쓰게 하는 것이다.
주인의 염려는 가라지를 뽑다가 알곡까지 뽑힐까 하는 것이다.
지금 이 생각이 어디서 온것인가 하는 것만 분명하면
그냥 두라는 것이다.

제껴놔 버리면 자연히 사단이 준것들은 힘이 없어진다.
제껴놓을수 있는 힘을 주님이 이미 주셨다.
안 제끼면 이 육신의 것은 계속 따라붙는다.

무엇이든 알아맞추는 도사가 있었다.
이도사를 골탕먹일려고 한사람이 파리를 손안에 쥐고
무엇인지 맞추라고 하니까 그 도사가 파리를 알아맞췄다.
그러자 죽었는지 살았는지 물었다.
그러자 그 도사는 파리가 죽고 사는 것은 네 마음에 달렸다.
고 대답했다.

하나님은 사단의 것들을 정말 거부하면 거부할 수 있는 힘을
이미 구원받는 그날 우리에게 주셨다.
사단이 주는 생각을 따라 산다는 것은 이미 내가 사단에게 동의
를 하고 마음을 내주었기 때문이다.

자고새는 집이 없는 떠돌아 다니는 새란다.
밤새 풀숲에서 자고 고생스러우니까 자고나면 집지어야지.하고
생각을 해놓고 낮에시간 많을 때는 팽팽놀고 또 자고나면 집지어야지
해서 이름이 자고새라고 한다.
앉아서 주님이 주시면 해야지. 맨날 생각만 하지말고 주인이신
하나님이 주님의 마음을 계속 심고 계신데 그 마음을 멸시치
말고 따라 나가보면 주님이 허락하신 열매들을 얻을수가 있는 것이다.

한달란트를 땅에 묻어둔 종을 보고 게으른 종이라고 하셨다.
주님의 마음을 알기에 게으르다는 것이다.
어떤일앞에, 어떤형편을 당하면 주님의 마음을 묻고 구하면
주님은 가르쳐주시고, 우리를 주님의 길로 인도하신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게시물은 인터넷선교님에 의해 2007-06-12 19:45:48 게시판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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